[이슈따라잡기]국내 전자산업 7가지 생존의 길

  • 입력 2001년 3월 20일 11시 25분


한국의 전자산업이 살아남으려면 이제 니치전략을 버리고 과감히 전면전에 뛰어들어야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 차세대 기술을 적극 공략하고, 현지화전략을 강화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LG경제연구원은 주간경제 최근호에서 '국내 전자산업의 7대 생존의 길'이란 글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LG는 국내 전자업체들이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을 전략방향, 비즈니스 시스템 등의 측면에서 7가지 범주로 정리했다.

다음은 보고서 내용 요약.

1. 니치전략을 버려라

대다수의 국내 전자업체들에게 있어서 그 동안 사업전략의 주류는 니치전략이었다. 선진업체들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즉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지 않는 제품과 기술을 공략하여 나름대로 입지를 굳히는 전략이었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국내 전자업체들은 비교적 짧은 기간내에 나름대로의 위상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앞으로는 니치전략을 과감히 버리고 전면전을 펴야 한다. 그 이유는 첫째, 우리나라 전자제품의 입지 또는 위상이 애매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산 가전제품은 고급품인 일본산과 저급품인 중국 및 동남아산으로부터 협공을 당하고 있다. 일본의 생산기지화 되고 있는 동남아산의 경우 품질은 일본제품에 육박하면서 가격은 국산제품보다 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국내 업체들이 과거의 사업패턴을 계속 고집할 경우 생존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둘째, 국내 전자업체들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선진업체들과 전면전을 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국산 평면 TV, 에어컨 등 주요 가전제품의 성능과 기능은 선진업체들의 것에 버금갈 정도로 향상됐다. 특히 앞으로 전자산업의 주류가 될 디스플레이 등과 같은 핵심부품과 디지털 TV 등 새로운 디지털 정보가전의 경우 대부분의 선진업체가 주력사업으로 선정하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분야에서는 전면전이 불가피하며, 니치전략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2. 본업에 충실하라

치열한 세계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필요불가결하며, 특히 후발주자인 국내 전자업체들 입장에서는 본업을 중심으로 부족한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본업을 소홀히해 어려움을 겪은 사례가 많다. 삼성그룹의 무리한 자동차 사업전개는 삼성전자의 운영자금 일부의 전용을 초래했고 또한 삼성전자의 사업가치 하락을 유발했다.

LG전자의 경우 차세대 이동통신서비스인 IMT-2000 사업권 획득에 실패하자 오히려 주가가 상승했다. 본업인 전자정보통신기기 분야에 충실하기를 바라는 주주들의 열망이 반영됐다.

그 동안 국내 전자업체들이 DRAM, LCD, 브라운관 등 세계 1위 제품들을 속속 탄생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몇 가지 사례만으로 국내 전자업체들이 본업을 소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DRAM은 현재 메모리 반도체의 주력분야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플래시메모리, 차세대 FRAM 등과의 경쟁이 불가피해 국내 업체로서는 꾸준히 역량을 쌓아 가야 한다. 또 타 분야에서도 원천기술면에서는 아직도 선진업체들에게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3.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핵심역량을 확보하라

국내 전자기업들의 기본적인 자원은 선진업체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향후 역량개선이 가능한 분야를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1865년 목재회사로 출발한 노키아는 80년에 TV와 컴퓨터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경영성과가 악화됐고 결국 92년 신임 CEO Jorma Ollila를 중심으로 통신분야로의 선택과 집중전략을 추진하게 됐다. 통신분야로의 사업방향을 정립한 후 노키아는 90년대 중반부터 비관련 사업부문에 대한 대대적인 매각을 단행했다. 95년의 전선, 전력, 타이어 등의 매각, 96년 TV사업 매각, 97년 스피커 및 튜너 매각, 2000년의 모니터 매각 등이 주요 매각 사례다. 이를 통해 현재 노키아는 세계 최고의 이동통신단말기 회사로 성장했으며, 이동통신시스템의 경우 에릭슨에 이어 세계 2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이동통신시스템 메이커인 스웨덴의 에릭슨은 금년 초 이동통신단말기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방침을 굳혔다. 2000년 기준으로 에릭슨은 세계 4위의 이동통신단말기 생산업체였다. 그러나 에릭슨은 단말기 사업의 수익성이 악화되자 오랫동안 지속해왔던 단말기사업을 매각하고 이동통신시스템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국내 전자업체들이 육성하려 추진중인 사업은 차세대 유망사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디지털 TV, IMT-2000 단말 및 시스템, 디스플레이 등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업분야는 국내업체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업체들도 공통적으로 집중 육성하려는 사업분야이다. 그렇다면 국내업체들이 이들 분야에서 차별적인 우위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현재의 역량만을 놓고 본다면 결코 장담할 수 없다.

국내업체들이 이들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려면 엄청난 자원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기존사업을 매각하거나, 집중 육성할 사업의 범위를 줄일 수밖에 없다.

4. 차세대 또는 차차세대 기술을 적극 공략하라

향후 유망 전자분야로 떠오르고 있는 각종 미디어, 디스플레이 등에서 대부분의 선진업체들이 원천특허를 장악하고 있다. 이미 사실상의 표준경쟁으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DVD의 경우 대부분 소니, 필립스, 도시바 등 선진업체들이 원천특허를 장악하고 있다. DVD의 탄생 배경이 CD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처음부터 국내기업들이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차세대 대형 디스플레이의 표준으로 부상하고 있는 PDP의 경우 일본의 후지츠가 상당부분의 원천특허를 장악하고 있어 국내업체들은 PDP를 생산하는 한 일정부분의 로얄티를 부담해야 하는 실정이다. 하드웨어 이외에 핵심 기술분야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현재 동영상 멀티미디어 정보의 압축복원 기술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MPEG 2의 경우 국내 삼성전자가 일부 특허를 보유하고 있을 뿐 이 역시 소니 등 선진업체들이 원천특허를 장악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전자업체들에게 있어서 원천기술 확보 문제는 첨예한 관심사다. 선진업체들의 로얄티 공세는 수익성 저하는 물론 사업전개 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

CDMA 단말기 1대를 생산할 경우 생산가격의 6% 정도를 퀄컴에게 로얄티로 납부해야 한다. 국내 업체들이 생산한 이동전화단말기는 약 4천7백만대이며 매출액으로는 약 11조원에 이른다. 여기에 6%를 적용할 경우 적어도 6천억원 이상이 로얄티로 해외에 빠져나간 셈이다. CDMA 원천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퀄컴은 작년 4/4분기에 매출액이 감소세로 반전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단말기 보조금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이동전화단말기의 수요가 크게 줄었고 이에 따라 핵심부품과 로얄티에 의한 퀄컴의 매출과 수익도 당연히 감소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빠른 속도로 수요가 확산되고 있는 DVD 롬 드라이브의 경우도 로얄티 문제는 아직 수면하에 감추어져 있다. 앞으로 비디오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되는 DVD 플레이어의 경우 상황은 더욱 비관적이다. DVD 플레이어 1대를 생산할 때 생산가격의 13∼16% 정도를 고스란히 로얄티로 상납을 해야 한다. 도저히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다.

우리나라 전자업체들이 가야 할 길은 차세대 제품과 차세대 및 차차세대 기술을 경쟁업체들보다 한 발 앞서 개발하는 것이다. 차세대를 이미 다른 업체가 선점하고 있다면 차차세대에 집중 투자해 반드시 기술적인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 전자산업은 기술발전 속도가 매우 빠르다. 차차세대 기술이나 제품도 빠르면 수년내에 상용화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차세대 및 차차세대 기술을 조기에 확보할 경우 그 기술을 현세대 기술과 Cross-licence 할 수 있어 로얄티 부담을 크게 줄일 수도 있다.

최근에 알려지고 있는 차세대 및 차차세대 투자의 성공사례들은 국내 전자업체들이 가야 할 방향을 자명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MPEG 2의 경우 선진업체에 뒤졌지만 멀티미디어 통신을 위한 차세대 동영상압축기술인 MPEG 4, 그리고 Copy Protection에 사용되는 차차세대 동영상압축기술 MPEG 21의 경우 LG전자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큰 활약을 보이고 있다. 특히 메모리 용량이 20기가급을 넘는 HDTV를 겨냥한 차세대 대용량 DVD의 경우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나란히 규격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동통신기술의 경우 이미 선진업체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차세대 IMT-2000에서 국내기업의 약진은 기대하기 힘들 정도이다. 따라서 차차세대 즉 4세대 이동통신부문에 대한 선행연구 및 기술투자를 적극 추진해야 하는데 이미 정통부를 중심으로 기업과 대학이 4세대 공동개발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5. 세계 최고의 생산기술을 활용하라

지금까지 국내 전자업체들의 핵심역량은 뭐니뭐니 해도 뛰어난 생산기술에 있었다. 세계 최고의 DRAM 업체로 부상한 삼성전자, LCD업계를 평정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가 짧은 기간에 세계기업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생산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생산역량을 적절히 활용할 경우 부족한 역량을 보완할 수 있는 기회가 다수 발생할 수 있다.

LG전자의 광스토리지 사업을 살펴보자. LG전자는 뛰어난 생산기술을 기반으로 한 ‘Time to Market 전략’을 통해 CD-ROM 드라이브의 배속 경쟁을 유발, 세계 최대의 업체로 성장했다. 그러나 DVD-ROM 드라이브에서는 매출의 10%를 웃도는 막대한 DVD 관련 로얄티 부담이 장벽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문제를 LG전자는 히타치와의 제휴로 간단히 해결했다. LG전자는 히타치와 R&D 관련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이를 통해 히타치의 원천특허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돼 로얄티도 4% 수준으로 줄일 수 있게 됐다. 물론 LG전자는 이에 대한 대가로 히타치에게 DVD-ROM 드라이브를 OEM 공급하고 있다.

6. 적극적인 네트워킹 전략을 추진하라

전자산업에서는 독불장군이 생존하기 어렵다. 국내 전자업체들은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효율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현재 세계 반도체 업계, 세계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이미 선진기업들은 전략적 제휴에 열올리고 있다. 일본의 NEC와 히타치는 작년에 각사의 DRAM 사업을 분리하여 엘피다 메모리를 공동 설립했다. 두 회사는 메모리 반도체의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에 소요되는 대규모 자금부담과 리스크를 독자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워 결국 라이벌 관계를 떠나 통합하기에 이른 것이다. 합작법인인 엘피다 메모리는 합병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다품종 소량 생산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차세대 대형디스플레이의 사실상의 표준으로 부상하고 있는 PDP 부문의 경우 후지츠와 히타치가 합작 설립한 FHP사가 기술력이나 생산측면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

7. 현지화 전략을 강화하라

국내 전자제품의 주 시장은 글로벌 시장이다.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현지화전략을 통해 뛰어난 역량을 보유한 현지업체를 육성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들 생산거점을 활용하여 지역시장의 니즈에 적합한 제품을 개발, 생산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세계 최대의 이동전화 단말기 업체인 노키아는 전세계 10개국에 현지화된 공장을, 15개국에 연구개발 거점을 보유하고 있다. 노키아의 국내 현지법인인 노키아 코리아의 경우 연간 2조원에 이르는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생산되는 이동전화단말기 전량을 유럽 등에 수출하고 있다. 이 회사는 기존의 OEM 방식에서 탈피하여 ODM 방식으로 본사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ODM이란 노키아 코리아가 제품 디자인에서 생산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을 독자적으로 진행해 최종제품을 본사에 공급하는 형태다.

삼성전자의 미국내 DRAM 생산거점인 텍사스주 오스틴공장의 경우 64메가 DRAM에서 세계 최고의 원가경쟁력을 확보해 삼성전자 본사에서도 직원을 견학시킬 정도다.

채자영<동아닷컴 기자>jayung200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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