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이래서 명작]'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입력 2001년 3월 20일 11시 03분


"그때에도 앨리스는 여전히 어린시절의 소박한 마음과 꿈을 지니고 있겠지. 어린아이들을 모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겠지. 나한테 해준 것처럼 말이야."

◇ 말더듬이 선생의 재미있는 이야기

루이스 캐롤의 본명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Charles Lutwidge Dodgson)으로 1832년 1월 27일 영국 체셔의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11명의 아이들 가운데 셋째 아들이었다. 루이스 캐롤은 옥스퍼드 대학의 클라이스트 처치에서 교육을 받았고 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에서 수학담당 튜터(Tutor, 정식 교수는 아니지만 자신에게 할당된 학생들을 개인적으로 지도하는 직책)를 맡게 된다. 그는 1882년 학교를 물러날 때까지 튜터직을 수행했다. 캐롤은 재학시절 수학과 고전학 분야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

기록에 따르면 캐롤은 말을 심하게 더듬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아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특히 캐롤은 자신이 튜터로 있던 클라이스트 처치의 학장 리델의 세 자매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인공 앨리스는 리델 학장의 세 딸 가운데 둘째인 앨리스였다. 1862년 여름 캐롤과 친구 로빈슨 덕워스는 리델 학장의 세 딸들과 함께 템스 강에서 뱃놀이를 하게 된다. 1862년 여름 당시 큰딸 로리나가 13살, 둘째딸 앨리스가 10살, 막내딸 이디스가 8살이었다. 뱃놀이를 하면서 캐롤은 평상시보다 훨씬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앨리스는 캐롤에게 자신을 위해 이야기를 글로 써달라고 부탁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캐롤은 작품을 쓰기 시작해 다음해 2월에 《앨리스의 지하세계 모험 Alice's Adventures Under Ground》이라는 초고를 내놓게 된다. 이 책은 앨리스의 부탁대로 오직 앨리스만을 위해서 쓴 환상으로 가득찬 모험담이었다. 후일 리델 학장 집에서 이 책을 우연히 보게 된 소설가 헨리 킹슬리가 출판을 권유하는 바람에 캐롤은 자신의 초고를 고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세상에 내놓는다. 그리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초판본에는 삽화가 존 테니엘이 그린 42장의 그림이 실려 있다. 이 삽화 때문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더욱 생동감을 얻었다. 디즈니사에서 만든 만화영화 역시 이 초판본의 삽화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 소녀들을 사랑하고 소녀들에게 사랑받다

루이스 캐롤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그것도 수학문제나 풀면서. 소녀들을 위해 이야기를 만들고 들려주는 것이 그의 유일한 취미였다. 그리고 또다른 취미가 있었다면, 사진기가 발명된 이후 사진찍기에 몰두한 것이다. 전기작가들에 따르면 캐롤은 자신이 알던 소녀들의 누드 사진을 열심히 찍은 것으로 보인다.물론 캐롤은 소녀들의 부모님에게 정중하게 부탁했고 부모님이 거절하면 결코 사진을 찍지 않았다.

이 이야기로 혹시 독자들은 이상한 상상을 할 수도 있다. 흔히 떠오르는 단어,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상(異常) 성욕을 의미하는 피도필리아(pedophilia)이다. 그러나 이런 쪽으로 캐롤을 설명하고 작품을 분석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일 수 있다. 피도필리아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구체적인 작품, 예를 들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Lolita,1955》 같은 작품도 존재하니 말이다. 캐롤은 누드 사진이 소녀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자신이 죽은 후에 파기하든지, 모델이었던 소녀나 부모님에게 돌려주도록 의뢰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단 한 장의 누드 사진도 남아 있지 않다. 물론 의혹은 여전히 남겠지만 말이다.

사실 캐롤은 어린 여자아이들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였던 것 같다. 이런 집착을 그의 작품 《실비와 부루노 Sylvie and Bruno, 1889》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캐롤은 평생을 독신으로 보낸 작가, 혹은 어린 소녀에게 강하게 이끌린 작가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캐롤을 만났던 소녀들이 완전히 마음을 열고 그를 대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나중에 많은 소녀들에 의해 확인된다. 캐롤이 소녀들과 사귀면서 순진함 이외에 다른 어떤 것을 느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물론 정신분석학적으로 순진함이야말로 가장 강력하게 성적 매력을 유발시키는 요인이라고 주장하면 더 이상 할말은 없지만 말이다.

종합해보면, 루이스 캐롤이 앨리스를 사랑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리고 캐롤이 앨리스를 위한 환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자신에게 부여된 억압의 탈출구를 찾았다고 평가하는 것도 크게 틀린 진술은 아니다. 다만 일부 정신분석학자들의 주장처럼 그 억압이 반드시 성적인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어여쁜 소녀가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면 그 앞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환상과 모험으로 얽히고 설킨 신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이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자 이제 앨리스가 경험한 환상의 세계로 우리도 달려가보자.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따분한 학교 생활에 지친 어린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골치 아픈 수학공식과 지당한 말씀만 늘어놓는 교과서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환상으로 가득 찬 이야기, 그것이 바로 앨리스가 꾼 한낮의 백일몽이다. 이야기에는 일관된 서사구조도, 명백한 의미도 설정할 수 없다. 그저 사건의 연속만 있다. 꿈이 무의식의 왕도라 믿고 있는 사람들은 앨리스의 백일몽에 온갖 의미를 꿰어맞출 것이다. 그렇게 할 사람은 그렇게 하시라. 그러나 그것은 헛수고로 판명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건과 사건의 연속, 의미 부여를 거부하는 무한 사건의 연속, 이것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전부다.

앨리스는 언니인 로리나가 그림 하나 없는 책을 읽는 것을 곁눈질로 쳐다보다가 따분한 나머지 졸음을 참지 못하고 낮잠에 빠져든다. 그 순간 눈이 빨간 토끼 한 마리가 앨리스 옆을 지나갔다. 토끼는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다. "큰일났어, 큰일났군. 이러다간 늦겠는걸." 앨리스는 갑자기 환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이 토끼는 조끼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들여다보면서 달려가고 있었다. 시계를 보는 토끼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는 앨리스는 무작정 토끼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앞서 달려가던 토끼가 커다란 토끼굴로 뛰어들자 앨리스도 따라 토끼굴로 들어갔다. 앨리스는 깊고 깊은 허공 속으로 둥실둥실 떨어져내렸다.

앨리스는 자그마한 홀에 홀로 남겨진다. 홀 주변에는 문이 여러 개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지만 열쇠가 없었다. 문득 황금색 열쇠를 발견하고 주변의 문을 열려고 했지만 문을 열기에는 열쇠가 너무 작았다. 그러던 중 앨리스는 커튼 뒤에 40cm 정도 되는 문을 발견했다. 세상에! 황금 열쇠는 그 작은 문에 꼭맞는 열쇠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이 너무 작아 앨리스는 빠져나갈 수가 없는데......

The more

◇ 글쓴이 이윤성

경희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대문학이론을 전공했으며, 현재 경희대학교 강사, 영미문학연구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북코스모스 가이드북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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