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와 놀아나다]새 TTL, 여전히 신비롭다

  • 입력 2001년 3월 2일 11시 24분


역시 TTL이다. 세상을 새롭게 탄생시키는 듯한 창조적인 감각은 가히 독보적이다. 그 독창적인 정서는 신비전략을 깨도 여전히 신비하다.

정면을 응시하는 소녀. 뜻밖에도 임은경이 아니라 처음 보는 얼굴. 소녀는 마법사처럼 까만 모자를 쓰고 옆구리에 드럼 스틱을 끼고 있다. 모자 틈으로 삐죽 삐죽 흘러나온 머리카락이 자유스러워 보인다. 시청자를 바라보는 그 시선에는 묘한 당돌함이 스친다.

드럼세트 위에 종이가루가 흩뿌려지고 한껏 웃으며 행복해하는 소녀의 모습. 현실일까, 환상일까. 이것은 어쩌면 소녀가 품은 꿈일지도 모른다. 소녀는 가방을 든 채 단호한 뒷모습을 보이며 잿빛의 건물들 사이로 자박자박 걸어간다.

그녀가 도착한 세상은 충격적인 모습이다. 솟아있는 건물들과 대지, 자동차, 심지어 드럼까지 세상천지 온통 흑백의 신문지로 휩싸여 있다. 아무런 색감도 움직임도 없이 마치 폐허처럼 죽어있는 세상.

꿈을 좇아 세상 속으로 뛰어든 소녀는 드럼을 친다. 두구둥 구두궁~. 스무 살의 젊디 젊은 심장박동처럼 마음을 울려대는 강한 비트의 드럼소리. 그 소리에 대지가 화답하듯 들썩이고 구름은 춤이라도 추듯 빠르게 움직인다. 세상이 소녀의 푸릇한 기운에 요동치고 깨어나듯이 말이다. 자연과의 공감 어린 경쾌한 이중주.

갑자기 이게 무슨 조화일까. 숨이라도 쉬듯 들썩이던 대지를 뚫고 개구리가 얼굴을 들이민다. 툭 튀어나온 눈과 다리를 보고 깜짝 놀라는 것도 잠시. 멀뚱히 세워져 있던 자동차에서, 높은 건물 위에서 펄쩍 펄쩍 뛰쳐나오는 개구리들. 삽시간에 세상은 온통 청개구리로 뒤덮힌다.

히야. 전위적인 예술작품을 보는 듯한 기분이다. 이번 TTL광고는 첫 화면이 펼쳐지는 그 순간부터 TV모니터를 장악하고 시청자들을 압도한다. 흑백과 연두의 대조적인 색감과 아이디어가 번득이는 설정이 감탄을 자아낸다.

광고의 첫 느낌은 무엇보다 신선하고 후련하다. 모호하고 신비로운 톤의 배경음악이 분위기를 잡아주고 드럼소리가 클라이맥스로 이끄는 구성. 그간 박제된 듯 닫힌 이미지 퍼즐만 봐오다가 솟아나는 젊음의 연주를 들으니 속이 뻥 뚫린다.

또 쇼킹한 화면 속에 배치된 코드는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다. 신문지로 휩싸인 세상은 무얼까? 신문에는 세상의 온갖 추함과 사건사고가 얽혀있다는 것, 흑백이라는 것. 이 설정은 세상이 고난과 어두움으로 도배된 잿빛 세계라는 TTL식의 암울한 은유다.

더덕더덕 얼룩진 신문지세상을 뚫고 나오는 청개구리는 젊음이고 희망의 메신저다. 봄을 알려주고 거꾸로 행동하는 청개구리의 습성이 스무 살의 정서와 닮아있지 않은가. 잿빛 세상을 청아한 연두 빛으로 물들이고 확 갈아 엎어버리는 것이다. 영화 <매그놀리아>에서 개구리비가 단죄의 의미라면 TTL의 개구리 세례는 전복적이다.

이전에 나온 '토마토 편'이 신비전략을 깨는 첫걸음으로 일종의 독립선언이었다면 이번에는 본격적인 스무 살의 꿈과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전속모델인 임은경은 보이지 않는다. 임은경으로 고착된 이미지를 환기하려는 속셈이다. 신인모델은 얼핏 배두나를 닮은 것 같지만 처음 보는 낯선 얼굴.

스무 살, 세상을 엎어버릴 기운이 샘솟는 특별한 지대. TTL은 그런 스무 살을 꼭 빼닮았다. 세상이 아니라 광고계를 뒤엎는 존재로 말이다. 다음 편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김이진 AJIVA77@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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