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제철 만나 펄펄뛰는 강구항 영덕대게

  • 입력 2001년 2월 15일 10시 39분


갈매기가 한가롭게 날아다니고 작은 통통배들이 어우러져 정겨운 풍경을 자아내는 영덕군내의 강구항.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로 한층 더 유명해진 이곳은 요즘 제철을 만난 대게 축제로 한창이다. 영덕대게는 금어기(6월초~10월말)를 제외한 나머지 기간 중 요즘이 가장 맛이 좋을때라고 한다. 그 이름도 유명한 영덕대게 맛을 보기위해 천리가 훨씬 넘는 길을 달려가 직접 체험한 강구한 현장.

올 겨울엔 정말 눈이 많이 온 것 같다. 몇십년 만의 폭설이니 어쩌니 하면서 법석을 떨기도 했지만 역시 겨울은 뭐니뭐니 해도 눈이 와야 제격인 듯 싶다. 눈 없는 겨울은 왠지 ‘앙꼬 없는 찐빵’처럼 맹맹하다.

겨울을 더욱 겨울답게 보이게 하는 게 또 있다. 찬 바람이 쌩쌩 부는 가운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가 그렇다. 요즘에는 예전처럼 많이 볼 수는 없지만 어느 곳이든 집앞 골목 입구에서 겨울밤을 지키며 버티고 있던 군고구마 통에서 구수하게 피어오르는 연기, 버스정류장 앞 포장마차 안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어묵국물의 김… 매서운 겨울 속에서 훈훈함을 느끼게 해주는 정겨운 모습들이다.

이즈음 구수한 향을 담은 뜨끈뜨끈한 김으로 거리 전체를 뒤덮고 있는 곳이 있다. 먹음직스러운 ‘영덕대게’로 유명한 경북 영덕군 강구면에 있는 강구항 거리가 바로 그곳. 강구항은 동해바다를 끼고 달리는 ‘전망좋은 도로’로 알려진 7번 국도변에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는 최고다. 다만 서울을 기점으로 할 때 조금(?) 먼 것이 ‘옥의 티’랄까?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포항에서 7번국도를 따라 올라가면 대략 6시간 정도,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에서 7번국도를 따라 내려가면 7시간은 족히 걸린다. 그러나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도착해보면 ‘그래도 잘 왔지’ 싶은 마음이 들기에 충분한 곳이다.

강구면에서 항구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너자마자 초입부터 자리잡은 영덕대게를 파는 식당이 약 1km에 이르는 부둣가 도로를 따라 줄줄이 늘어서 있다. 2백개가 넘는 식당 앞에는 하나같이 영덕게를 찌고 있는 찜통 속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그 풍경을 보면 과연 ‘영덕게의 고장’다운 모습이라는 걸 절로 실감하게 된다.

먹을 게 많은 부둣가라서 그런지 한가롭게 날아 다니는 갈매기가 유난히 많은데다 출렁이는 바닷물결에 따라 살랑살랑 움직이는 작은 통통배가 정겨운 느낌을 주는 강구항은 TV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촬영 현장으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른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식당마다 하나같이 ‘<그대 그리고 나> 촬영현장’ 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는 모습에 괜한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야말로 ‘쭉쭉빵빵’ 하다는 소리가 딱 어울리는 길쭉한 8개의 다리, 반면에 툭 튀어나온 눈과 갑옷처럼 딱딱한 등딱지가 어우러져 독특한 ‘외모’를 지닌 대게가 각 식당 앞 수족관마다 그득히 들어있는 모습 또한 강구항만의 이색적인 풍경이다.

강구항에서는 금어기(6월초~10월말)를 제외한 나머지 기간 내내 영덕게를 맛볼 수 있지만 그중에서 특히 한겨울(12월~2월)에 먹는 대게가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대게는 강구뿐만 아니라 울진, 구룡포 등 경북 북부 바닷가에서도 잡히지만 뭐니뭐니 해도 영덕대게를 최고로 쳐준다. 영덕대게는 개펄이 전혀 없고 깨끗한 모래로만 이루어진 수심 3백~4백m 깊이에서 서식해 사실상 양식이 불가능하고 비브리오균 등의 기생충도 전혀 없다. 이러한 해양환경이 바로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영덕대게를 낳게 하는 것.

영덕군 강구면과 축산면 사이의 앞바다에서 잡힌 영덕대게는 타 지역산보다 다리가 길고 속살이 토실토실한데다 맛이 쫄깃쫄깃하여 예로부터 임금님께 진상되면서 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영덕대게의 유래를 보면 고려 태조가 영덕군내의 영해지역을 순시했을 때 주안상에 대게가 수라상에 오르면서 지역의 특산물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

참고로 대게란 이름은 몸체가 크다고 해서 붙여진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두어야 할 것 같다. 길쭉한데다 다리 마디의 생김새가 대나무와 흡사하다 하여 ‘대게’ 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영덕대게는 맛도 일품이지만 영양면에 있어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 지방 함량이 적어 맛이 담백하고 소화가 잘될 뿐만 아니라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해 회복기 환자와 발육기 어린이에게 특히 좋다. 또 내장기능을 원활하게 하여 가슴이 답답한 증세를 풀어준다고도 한다. 아울러 대게에 다량 함유된 키토산은 면역력을 높여주고 여성들의 미용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인기가 높다.

하지만 명품에는 늘 가짜가 따라 다니는 법. ‘대게’에도 ‘홍게’라는 유사품이 있어 주의할 필요가 있다.

홍게는 동해와 일본 전역의 해역에서 서식하며 겉모양은 대게와 비슷하지만 껍질이 딱딱하고 속이 꽉 차지 않은데다 맛도 덜하다. 게살 특유의 향도 훨씬 떨어진다. 때문에 가격 차이가 절반 이상이 난다. 그렇다면 타지에 가서 ‘혹시 바가지 쓰는 건 아닌지’ 염려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한 식당 주인의 말에 의하면 행여 ‘바꿔치기’를 할까봐 자신이 고른 게가 찜통에 들어갔다 나올 때까지(보통 20분쯤 걸린다) 지키고 서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강구항에서 그런 의심(?)을 한다는 건 쓸데없는 기우다. 그야말로 ‘장사 하루 이틀 할 것도 아닌’ 집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라도 대게와 홍게를 구분하는 건 다행히 별로 어렵지 않다. 홍게는 배와 등이 모두 붉은색이지만 대게는 찐 상태에서 등껍데기는 주황색, 배쪽은 흰색을 띠기에 금방 알 수 있다.

사실 영덕대게의 가격은 만만치 않다. 물론 어획량이 많을 때는 싸고 적을 때는 비싼, 소위 말하는 ‘시가’로 따지지만 그것도 다 자기 복이다. 기자가 취재할 당시(1월 초)만 해도 그곳에서 제법 크다고 하는 대게 한 마리가 12만원 정도. 두세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강구항내에서도 가격차이는 약간 있다. 이곳에는 두 부류의 식당가가 있다. 부둣가 도로변에 있는 ‘버젓한’ 식당가와 ‘풍물거리 지하상가’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도로 아래로 나 있는 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지하실 같은 허름한 식당가가 따로 있다. 두 곳의 가격은 조금 다르다. 물론 허름한 쪽이 조금 싸다. ‘윗동네’에서 12만원 정도 하는 게가 ‘아랫동네’에서는 8만~9만원 정도 한다.

그렇다면 똑같은 대게를 두고 가격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뭘까? 풍물거리 지하상가 주인들은 노점상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 하는 곳이기에 시설은 다소 허름하지만 그만큼 부대비용이 덜 들어 조금 싼 것이라고 했다. 반면 강구항의 경매 지정대리인이자 ‘윗동네’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창건씨에 의하면 “속살이 확실하게 차고 상품가치가 있는 상품은 몇% 안돼 같은 크기라도 입찰가가 다르다”며 “아마도 물건을 선별하는 데 차이가 있어서 그럴 것”이라고 한다. 가격이 다른 만큼 그만큼의 차이는 있겠지만 외지에서 대게를 먹으러 오는 입장에선 ‘도토리 키재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윗동네’를 가든 ‘아랫동네’를 가든 그건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일이다.

영덕게는 본고장에 와서 직접 맛보는 것이 제격이겠지만 와서 먹어본 사람들은 선물용으로 사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식당마다 아이스박스에 꼼꼼히 포장해주기 때문에 가져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 뿐만 아니라 식당에서 택배로 보내주기도 한다. 유통기간도 이틀 정도는 너끈히 ‘버틸 수’ 있어 전국 어느 지역에 사는 사람이든 안심하고 사갈 수 있다.

단 집에서 영덕대게찜을 손수 해서 먹으려면 약간의 요령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영덕대게라도 잘못 요리하면 헛일. 무엇보다 대게는 물에 삶는 것이 아니라 김으로 쪄야 한다는 게 관건이다. 또 기자가 강구항의 한 식당에서 유심히 보니 수족관에서 꺼낸 게를 뜨거운 수증기를 쐬어 ‘기절’시킨 다음 찜통에 넣는 게 눈에 띄었다. 살아있는 대게를 그대로 찜통에 넣으면 뜨거움에 못이겨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다리가 다 떨어지고 몸통 속의 게장도 다 쏟아지기 때문이라나?

아무튼 집에서 요리할 때도 미지근한 물에 담가 두었다가 대게가 죽은 것을 ‘반드시’ 확인한 후에 쪄야 한다. 이때 대게의 배를 반드시 위로 향하도록 한다. 그래야 뜨거운 김이 들어가도 게장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게에서도 비릿한 냄새가 조금 나는 만큼 찔 때 청주나 맥주를 물속에 부으면 비린내가 제거된다는 귀띔도 들었다. 특히 액체상태인 게살은 찌고 난 후에도 액체로 있다가 식으면 딱딱하게 굳어진다. 따라서 중간에 성급하게 솥뚜껑을 열어버리면 몸통 속의 게장이 다리살쪽으로 흘러들어가 다리살이 검어지기에 게가 완전히 삶아질 때까지는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한다.

대게찜이 아무리 훌륭하게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또 하나의 ‘고비’가 남아있다. 대게 판매점에 가보면 게를 주문해놓고 ‘민망하게도’ 다른 사람이 먹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대게 먹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딱딱한 껍데기를 벗기다 못해 나중엔 성질에 못 이겨 우적우적 씹어 먹다 그냥 버리는 사람들… 에고 아까워라! 경험컨대 게는 부지런하고 꼼꼼한 사람들이 먹어야 할 것 같다.

대게는 껍데기만 빼고 알뜰하게 모두 먹어야 한다. 다리살은 끝마디를 모두 부러뜨려서 당기면 살전체가 통째로 나온다. 또 대게 끝부분을 부러뜨린 후 다리껍질을 길쭉하게 가위질 한 후 파내서 먹는다. 잘 모르겠으면 아예 식당 주인한테 ‘자문’을 구하는 것이 손해를 막는 지름길이다. 그리고 몸통살과 게장은 뜨끈뜨끈한 공기밥에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려 비벼 먹으면 그 맛 또한 기가 막히다. 강구항에서 그런 게장볶음밥을 잘하기로 소문난 집으로는 삼화식당(054-733-4511)을 꼽는다.

영덕에서 ‘별미’를 맛보았다면 소화도 시킬 겸 근처를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 회색빛 도심에서 탈출해 탁트인 바다를 보며 답답함을 떨쳐버리고 싶을 때 영덕은 더없이 좋은 곳이다. 53km에 이르는 영덕 해안선 도로는 최남단 남정에서 최북단 병곡까지 나 있다. 특히 강구에서 축산까지 연결되는 918번 도로는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운치있는 드라이브 코스가 아닌가 싶다.

빼어난 기암괴석의 절벽 위로 난 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마치 차가 바다로 들어가는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켜 가슴이 ‘쿵’떨어지기까지 한다. 도로를 따라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는 소박한 어촌풍경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게 할 것이다.

또한 그리 거창하진 않지만 영덕군 축산면에 있는 ‘신돌석 생가’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 그야말로 시골이라는 느낌이 드는 작은 마을 어귀에 위치한 구한말 의병대장의 집이다. 태백산 호랑이로 이름난 신돌석 장군은 당시 영해, 영덕, 평해를 거점으로 일제에 항거, 큰 전과를 거둔 인물.

영덕에서 7번 국도를 따라 울진 방면으로 14km 정도 가면 장군의 생가로 들어가는 이정표가 보여 찾기는 쉽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는 포항이나 영덕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울진 방면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10~15분 간격으로 출발해 승용차가 없는 ‘뚜벅이족’이 찾아가기에도 좋다.

돌담 안에 동그마니 놓여진 작고 아담한 초가집 두채를 보노라면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에 취해 왠지 모르게 어릴적 옛추억이 살아나는 듯한 느낌이다. 이쯤 되면 영덕게 맛을 보기 위해 찾은 강구항 여행에서 더 바랄 건 없을 것 같다.

<글·최미선 기자, 사진·박창민(프리랜서)>

(여성동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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