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영삼씨, 모두 밝혀라

  • 입력 2001년 2월 11일 18시 44분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한 전직 대통령 김영삼(金泳三)씨의 ‘도쿄(東京) 발언’은 그냥 넘겨서는 안될 중대한 문제다. 김씨 발언의 요점은 자신이 집권하고 있을 때 세무조사를 한 결과 언론사가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문제가 많았지만 봐줬다는 것이다.

김씨는 94년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를 ‘언론사 장래를 위해’ 공개하지 않았다고 했다. 결과를 공개하면 언론사가 ‘존립에 문제가 있을 만큼’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집단이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당시 세무조사 내용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기왕에 입을 연 이상 어물어물 덮을 수는 없는 일이다. 어느 언론사가 얼마를 탈루했고, 어떤 불법 탈법 행위를 저질렀는지 구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전체 언론사를 한목에 싸잡아 매도하는 것은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만을 걷잡을 수 없이 부풀릴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민주주의제도 자체에 대한 본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전체 언론을 불신하는 풍토에서 무슨 민주주의가 가능하겠는가.

김씨는 또 당시 언론사가 추징당해야 할 세금을 ‘얼마만 받고 끝내라’며 깎아 주었다고도 말했다. 마치 큰 시혜(施惠)라도 한 듯한 말인데 도대체 대통령이라고 세금을 멋대로 깎고 말고 할 수 있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이는 국가조세권에 대한 명백한 월권이자 위법이다.

결국 김씨는 현정부의 ‘언론 탄압’ 의도를 비난한다면서 그 자신 ‘언론 길들이기’를 시도했다는 점을 자인한 꼴이다. 따라서 94년 세무조사 내용은 물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무조사의 결과도 문제가 있다면 숨김없이 공개되어야 마땅하다. 더 이상 권력과 언론의 ‘더러운 흥정’이란 의혹을 남겨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언론사 세무조사가 ‘언론과의 전쟁’이니 ‘조폭 언론’이니 하는 본질외적 논란으로 확대되는 것 같은 최근의 분위기를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본란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세무조사든,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든 적법 절차에 따라 공정히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엄정히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행여 지금의 언론사 세무조사에 언론 탄압이나 언론 길들이기 의도가 숨겨져 있다면 그것은 결코 용납될 수도, 성공할 수도 없는 구시대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이 길들이려고 한다고 언론이 길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언론의 기본 임무인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는 어떤 이유로도 제약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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