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대근/우체국과 ‘소포’

  • 입력 2000년 12월 21일 18시 33분


평소 무심하게 지내던 사람들도 이맘때가 되면 한번쯤 주위를 돌아보게 된다. 성탄카드나 연하장을 찾는 것도 그런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최근 일상적으로 E메일을 주고받게 되면서 ‘연말연시 우편물’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지만 그래도 요즘 우체국에는 ‘마음’이 담긴 카드와 소포가 산더미를 이루고 있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12월 11일부터 내년 1월 10일까지 한달 간의 우편 물량이 4억5000만통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성탄카드와 연하장이 4900만통으로 전체의 11%가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우정사업은 1884년 고종의 칙명으로 한성과 인천에 우정총국(郵政總局)이 설치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홍영식(洪英植)을 중심으로 한 개화파가 이를 적극 추진했고 한성순보(漢城旬報)도 영국 우편세 등의 예를 들어 우정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성과 인천간의 우편사무는 갑신정변과 함께 17일 만에 중단됐다. 그 후 1895년 ‘우체물 체송법’ 등의 공포절차를 거쳐 11년 만에 우편사무가 재개됐다.

▷그 후 우체국은 줄곧 정보유통의 핵심역할을 맡아왔으나 최근 E메일이 보편화되고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얼마 전 만국우편연합(UPU)은 2005년까지 재래우편물이 26% 이상 감소할 것이란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우정사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진단이다. 살아남자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우체국마다 ‘인터넷 플라자’가 개설되고 우체국 직원이 집으로 찾아와 소포를 접수하는 제도도 생겼다.

▷서비스 위주의 우체국 소포제도는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엊그제 청주에선 ‘허수아비 소포’가 등장했고 서울의 한 사무실에는 죽은 쥐가 든 협박소포가 배달되기도 했다. 도의회의 무능을 꼬집기 위해 시민단체가 보낸 허수아비 소포는 애정 어린 충고라는 점에서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실현을 위한 네트워크’ 에 전달된 ‘죽은 쥐 소포’는 심각한 테러행위다. 혹시 시민들의 ‘소포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송대근논설위원>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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