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와 놀아나다]TTL 스무 살 메신저 '임은경'

  • 입력 2000년 12월 8일 20시 43분


TTL '토마토'편이 방송된 지 이제 1주일 남짓. 임은경의 쇼킹한 변신이 화제다. TTL소녀로 통하는 임은경이 이번 CF에서 신비전략을 깨고 살아있는 '웃음'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없는 덩그런 하얀 벽을 배경으로 빨간 머리, 빨간색 의상을 입은 임은경이 서있다. 그녀의 독특한 존재만으로도 하얀 벽의 불확실한 공간이 서서히 물들어가며 채색되는 느낌이다. 바닥에 살짝 앉은 그녀가 입을 뗀다. '토마토는 보기도 싫어요'

그런데 이게 무슨 일. 갑자기 토마토가 날아 온다. 그냥 토마토가 아니라 하얀 벽을 향해, 임은경을 향해 맹렬히 달려드는 공격형 토마토. 벽에 맞아서 퍽퍽 터지고 소녀의 몸에 맞아서 터지고 끊임없이 파열된다.

한참 토마토에 맞은 임은경이 자리에 주저앉아 자신에 대한 얘기를 미니인터뷰 하듯 스스럼없이 늘어놓기 시작한다.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새침한 표정으로 '남자 친구는요. 잘생기면 좋죠 뭐' '음악은 다 좋아해요 다' '공부에 대해선 물어보지 마세요. 충격적이예요' 성적 얘기를 마치고는 바닥에 쓰러지는 제스처까지.

크고 맑은 눈을 반짝거리며 스타카토로 한 음절씩 스.무.살.이라고 내뱉는 임은경. 마지막으로, TTL소녀는 손에 든 토마토를 터뜨리고 Made in 20 TTL 자막이 깔린다.

임은경은 눈빛 하나까지 절제하던 이전과는 다르게 자연스럽게 웃고 얘기하는 일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의외의 즐거움은 강렬한 락 비트의 음에 맞춰 토마토가 벽에 닿으며 터지는 그 순간 시원하고 짜릿한 느낌이 든다는 것. 토마토 즙을 뒤집어쓴 채 웃는 그녀의 티없는 모습도 더 없이 후련하다. 마치 한편의 즉흥적인 행위예술을 보는 듯한 강렬함과 흥겨움이 묻어난다.

그렇다면 토마토는 어떤 존재일까. 분류상 채소지만 심리적으로는 과일로 인식되는 경계가 애매한 물건이다. 마치 박쥐같은 존재다.

바로 그 점! 20대의 애매 모호한 정체성과 닮아 있지 않은가? 20대는 뭐라고 딱 꼬집어 단정 내릴 수 없는 혼란과 모호함이 가득한 특별한 영역이다. 아이와 어른의 중간지대.

'토마토는 보기도 싫어요' 이 말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자신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고백하는 말이고, 깜찍한 독립선언 같은 것이다. 토마토 같은 불투명한 존재를 거부하고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몸짓. 날아오는 토마토를 정면으로 맞고, 손으로 터뜨리며 한바탕 놀아나는 것은 스무 살로서 독립하는 의식처럼 느껴진다.

그간 보여준 TTL광고는 몽롱한 분위기만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절묘하게 짜여진 '정체성 찾기'의 긴 여정이었다. 조각조각 이미지와 절묘한 눈빛으로 등장한 임은경이란 소녀는 또 다른 자신을 찾아나서는 스무 살의 여행 가이드인 셈. 박제된 물고기, 연못가의 앙상한 나무 한 그루, 물 맞는 돌, 너 행복하니? 물어오는 한 소녀.

이것은 스무 살이 느끼는 자신들의 분신 같은 존재들이다. 이제 그녀는 꿈 같은 여행을 마치고 사뿐히 땅에 발을 딛으며 제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스무 살 또래와 같이 고민하며, 같이 웃는 친구로 돌아온 임은경.

지상으로 유배된 요정 같은 이미지의 TTL소녀. 그녀는 두려움 없는 시선으로 우리로 하여금 꿈을 꾸게 만들었다. 하지만 TTL이라는 프레임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게 사실. 살아있는 그녀의 모습이 반가우면서 한편으론 걱정스럽다. 그녀가 어떻게 TTL을 뛰어넘으며 이미지를 변신할지 궁금해진다.

김이진 AJIVA77@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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