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모리가 돈 한푼 안들이고 트랙터를 타고 다니며 빈민층을 설득해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그 소식을 들은 일본인들은 아침식사 전인데도 정종(청주)잔을 높이 들고 ‘반자이(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이역만리 타국땅에서 같은 핏줄이 대통령에 당선됐다니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그 후 일본은 23억달러의 정부개발원조를 퍼붓고 천문학적 수치의 투자를 쏟아내면서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했다. 남미를 뒤뜰로 여기는 미국도 그렇게는 못했다.
▷후지모리는 그러나 집권한 지 2년 만에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고쳐 철권통치를 시작하면서 검은 속내를 드러냈다. 1996년 말 게릴라들이 리마주재 일본대사관저를 점령하고 외교관들을 인질로 테러를 벌인 것은 일본을 등에 업고 전횡을 해 온 후지모리에 대한 경고의 시작에 불과했다. 급기야 올 들어 헌법상 금지된 3선의 벽을 넘으면서 그는 몰락의 길에 들어섰는데 그게 집권 꼭 10년의 일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은 양의 동서에 관계없는 진리였다.
▷후지모리는 자신을 후원해 준 일본을 배신했다. “일본인들이 자신들보다 열 배나 더 부지런하고 정직하다”고 여겨 온 페루인들의 기대도 저버렸다. 그런 후지모리가 페루국민의 심판을 피하는 길로 조국을 선택했고 일본은 ‘돌아온 탕자’를 가슴에 품으려는 모습이다. ‘우리’중시의 유교문화권이 보여주는 집단지향성 행태의 전형이다. 일본이 핏줄에 대해 보여 준 그 넓은 가슴으로 과거 식민지시절에 대한 반성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이는 일본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규민논설위원>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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