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교수의 법과 영화사이]금지된 자유

  • 입력 2000년 11월 9일 10시 27분


▼<금지된 자유>(Roe vs Wade, 1989)▼

Director: Gregory Hoblit

Ellen: Holly Hunter / Sarah Weddington :Amy Madigan

여성의 몸은 특수하다. 따라서 여성의 몸에 대해서는 특수한 철학적 성찰과 법적 취급이 필요하다. 여성은 임신과 출산을 통해 인간의 생명에 영속적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만의 특권은 여성에게만 가해지는 속박일 수도 있다. 1973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전세계에 충격을 던지는 판결을 내렸다. (Roe v. Wade, 410 U. S. 113, 1973) 즉 여성은 자유의사로 낙태를 할 헌법적 권리가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기존의 사회적 통념과 법이론을 정면으로 뒤집는 획기적인 판결이다. 그리고 그 권리는 여성의 몸에 함께 얹혀 있는 가족적 가치와는 무관하게 오로지 여성 개인의 권리라는 함의를 담았다.

이 판결로 본격적인 여권운동에 불을 지펴진 것이다. 사람들의 삶의 행태와 가치관을 바꿀 것을 주문하는 판결인 만큼 이 판결의 내용과 지혜에 대해 끊임없는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판결이 내려진 지 27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국 대통령선거와 대법관의 임명에서 어김없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낙태를 반대하는 세력은 태아의 '생명권'(pro-life) 을 뺏는 문제라고 주장하는 반면 찬성하는 세력은 여성의 '선택권'(pro-choice)의 문제로 인식한다. 레이건 대통통령 시절 대법관후보로 지명된 로버트 보크 (Robert Bork)는 공공연히 로 판결을 비판하는 학술논문을 발표한 것이 문제가 되어 끝내 진보주의자들의 공격을 받고 상원의 인준을 얻는 데 실패했다.

영화 <금지된 자유>(Roe vs Wade, 1989)는 역사적인 '로 대 웨이드' 판결 과정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판결 후 16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영화가 제작된 것이 판결의 내용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안정된 직업도 없이 아비 없는 아이를 임신한 엘렌은 낙태를 원한다. 그러나 텍사스주 법은 임신을 계속하게 되면 부녀의 생명에 위협이 초래될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한다. 강간당했노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백방으로 방법을 모색하던 앨런은 낙태합법화 운동을 벌리기 위해 누군가의 제소를 기다리는 여자 변호사 사라를 만난다. 사라는 '제인 로우'라는 가명으로 주검찰총장을 상대로 달라스 소재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다. 문제의 법이 연방 헌법이 보장하는 여성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헌법에는 프라이버시라는 명문의 조항이 없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헌법의 해석을 이러한 권리를 창출해 낸 것이다.

이 판결보다 불과 8년 앞선 1965년의 판결(Griswold v. Conneticut, 381 U. S. 479)에서 판결문의 집필을 담당한 윌리엄 더글라스(William Douglas) 판사는 헌법의 기본권 조항인 권리 장전의 "반영"(半影, penumbra)으로부터 방출(emanate)되는 것이 프라이버시권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이를테면 헌법전에 구체적으로 열거되지 아니한 권리를 헌법의 구조와 근본정신으로부터 도출해 낸 것이다. 그리스월드 판결은 기혼부부가 자율적으로 피임수단을 사용할 수 있는 프라이버스의 권리를 인정한 것인데 로 판결은 이제 가족제도와 무관한 여성의 프라이버시권을 인정한 것이다.

햄릿의 말대로 '법이 지연'( law's delay) 인줄 모르고 즉시처방을 고대하던 앨렌은 그 동안 아이를 출산한다. 엘렌 개인의 문제가 모든 여성의 문제이기에 소송은 계속된다. 3년 후 사라가 직접 변론대에 선 재판에서 연방대법원은 역사적인 낙태판결을 내린다. 앨렌은 익명의 로가 바로 자신임을 밝히고 주위의 격려를 받는다. 영화 <금지된 자유>는 균형 있는 담론의 장을 제공하는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세계의 모든 여성과 여성의 몸을 규제의 대상으로 삼은 법제에 대해 던져주는 심각한 경고의 메시지는 경청할 가치가 충분하다.

연방대법원이 이 판결을 내린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한 저술도 많다. 그 중 "형제대법관들"(The Brethren. 1979)이 압권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쳐 일약 전설적인 명성을 얻은 봅 우드워드(Bob Woodward) 기자의 심층 취재 끝에 탄생한 저술은 (이 책의 번역본은 '판사가 나라를 잡는다, 판사가 나라를 살린다', 철학과 현실사, 1996) 수 천만권의 판매실적을 남긴 연방대법원 비사이다. )

지고한 권위의 전당인 연방 대법원은 새 생명이냐(pro-life) 아니면 자유 선택이냐(pro-choice)라는 본질적인 가치관의 대립을 조정해야 할 의무를 부여받았다. 버거(Burger)원장은 한때 의사 지망생이었고 또 수많은 노벨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미네소타의 메이요(Mayo)병원의 원내 변호사의 경력이 있는 해리 블랙먼( Harry Blackmun) 판사로 하여금 판결문을 작성하도록 하였다.

블랙먼이 1년 가까이 고심 끝에 내놓은 것이 세계 각국의 낙태입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 너무나도 유명한 "삼분기원칙"(三分期原則 ; trimester principle)이다. 이에 의하면 출산을 할 것이냐 아니냐를 선택할 부녀의 프라이버시권과 태아의 생명 및 부녀의 건강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이해관계(governmental interest)는(이에 부차적으로 태아의 생부의 이해 관계도) 3단계로 나누어 법원칙을 정립할 수 있다고 한다.

내용인즉 ①임신 최초의 삼분기 동안 부녀는 (의사의 충고에 의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낙태할 수 있으며 ,국가는 이와 같은 임부의 프라이버시권을 제한하지 못하며 ②제 2삼분기 동안은 임부의 건강을 고려하여 낙태의 절차를 규율할 수 있으며 ③최후 삼분기 동안에는 태아의 생명이나 임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체의 낙태를 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랙먼의 삼분기 원칙은 태아의 생명의 시기(始期)보다는 의학적 경험론에 입각한 기준으로, 임부의 건강에 관한 국가의 이해관계는 최초 삼분기말에 <필수불가결>(compelling)하게 되며, 태아의 생명에 관한 한 <독립생존가능성>(viability)이 높아지는 제2삼분기 말에 <필수불가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판결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큰 파장을 던진 것은 물론이다. 독일에서는 로판결의 삼분법에 따라 최초의 삼분기 동안 여성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낙태의 권리를 인정하는 법률이 제정되었으나 1975년 연방헌법재판소( Bundesverfassungsgericht)에 의해 위헌으로 선언되었다.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법률이라는 것이다. 로 판결에 대한 시비는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고 블랙먼에게는 '낙태판사'라는 별명이 주어졌고 수 차례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로우 판결은 후속의 일련의 판결에 의해 그 세칙에 약간의 첨삭, 수정이 가해지고 있으나 여성의 프라이버시권이라는 헌법적 권리 그 자체는 이미 미국의 헌법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로 판결과 프라이버시권 드라마의 주역배우는 영화 속의 홀리 헌터처럼 펭권형 여성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남성 동성연애자도 보조자로 편승하고 있다. 미국법원이 도덕적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내린 일련의 프라이버시권 관련 판결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다른 곳에 있다. 첫째로 전통적인 도덕이나 윤리에 어긋난다손치더라도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직면하여 판단과 지침을 내려주는 것이 사법부의 임무라는 사실이다. 법원이 사법부의 기본 속성을 내세워 지나치게 자제만 추구하면 점점 국민과의 괴리를 자초할 뿐이라는 교훈이다. 또한 판사는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결과의 판결을 위해 구체적인 실정법조항뿐만 아니라 보다 상위의 규범을 동원할 기회가 언제나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월드 판결이나 로판결 처럼 헌법조문에 존재하지 않는 프라이버시권을 그 정신대에서 창출해내는 인고의 작업을 우리 법원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다행스럽게도 역사가 길지 않은 우리 헌법에는 프라이버시권(사생활 자유권)을 위시한 각종 자유와 권리가 의연하게 헌법전에 위용을 과시하고 있으니까. 단지 적용될 기회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헌법의 인권 조항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생각되는 또는 명백히 그 정신에 반한다고 생각되는 법률을 두고 고심하는 판사를 도울 길은 없는가? 마음만 먹으면 판사 스스로도 할 수 있는 일은 아닐까?

안경환<서울대 법대 교수> ahnkw@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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