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닷컴기업 '시들' 장비업체 '펄펄'

  • 입력 2000년 10월 26일 19시 39분


최근 한 인터넷 게임 업체는 벤처캐피털인 KTB네트워크에 투자를 요청했으나 거절을 당했다. 사업 아이디어는 괜찮지만 비슷한 선발 업체들이 있어 시장 지배력이 떨어진다는게 이유였다.

정보검색 업체 한 곳도 비슷한 시기에 투자 유치에 실패했다. 경쟁이 치열한 업종이어서 확실한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 KTB네트워크 권오용상무는 “예전처럼 아이디어와 미래 전망만 믿고 투자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밝혔다.

최근 일반 벼보다 작황이 20% 이상 좋은 ‘슈퍼 벼’를 개발한 생명공학 벤처 싸이제닉의 경우는 이와 정반대. 슈퍼벼 발표를 전후해 생명공학 관련 대기업과 기관투자가들로부터 투자에 참여시켜달라는 제의가 잇따랐다. 유수의 다국적기업들도 관심을 보여 조만간 결실을 볼 전망.

장외 벤처기업들의 옥석가리기가 한창이다. 특히 벤처업계에서 ‘정현준쇼크’로까지 불리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벤처업계는 우열에 따른 성공과 퇴출이 확연하게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벤처캐피털을 비롯한 투자기관들이 공통적으로 ‘투자유망’하다고 꼽는 업체들은 반도체장비, 네트워크 장비, 솔루션 등 구체적인 ‘제품’을 만드는 업체들. 무한기술투자 박희철팀장은 “닷컴기업에 대한 투자는 줄어들었지만 장비 업체들에 대한 투자는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벤처전문 홍보대행사 벤처PR의 이백수사장도 “장비 업체들은 아직 호황이며 전망도 좋은 편”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외국계 벤처캐피털도 이같은 국내 우량 벤처기업을 ‘헐값’에 사들이기 위해 속속 진출하고 있는 상황.

옥석가리기는 장외시장에서도 이미 진행되고 있다. 코리아밸류에셋 윤희철팀장은 “시장이 얼어붙은 가운데서도 강원랜드 시큐어소프트 온세통신 등 실적과 전망이 현실적인 업체들은 소량이나마 거래가 되고 있다”면서 “시장이 안정되면 이들 기업과 기타 기업간 차별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번 한국디지탈라인 사태를 계기로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평가가 해당 업체를 평가하는데 더욱 중요한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권오용상무는 “CEO는 가장 크게 고려하는 변수 중 하나”라면서 “투자 요청이 들어오면 그 회사 CEO에 대해 전방위로 알아본다”고 밝혔다. ‘기업을 알면 최소 6개월을 투자하고, 기업인을 알면 1년이상 묻어둬라’는 투자의 기본 원칙이 더욱 강조되는 분위기다.

한편 이같은 옥석가리기는 제도의 변화에 따라 한층 빨리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벤처기업들이 가장 쉽게 자금을 조달했던 인터넷 공모가 이달부터 금융감독원의 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얼어붙고 있기 때문.

이같은 분위기에 대해 서울벤처밸리의 한 인사는 “지금까지 벤처열기를 타고 수익성 유무와 관계 없이 벤처기업들은 함께 움직이는 분위기였으나 앞으로 불량 벤처기업들이 퇴출되면 보다 건강한 벤처생태계가 만들어져 내용이 좋은 벤처기업들은 성장하기가 더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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