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홍찬선/재벌흉내 벤처의 종말

  • 입력 2000년 10월 22일 18시 31분


한국디지탈라인(KDL), 디지털임팩트, 그린필백화점, J&H, 아이베스트창업투자, Megadeal M&A…. 정현준 KDL 사장이 거느리고 있는 계열 또는 관계사는 무려 20개에 달한다. 대부분이 98년 8월부터 고작 2년여만에 새로 사들인 것이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처럼 지나치면 아니한 만도 못할 때가 많다.

정사장은 벤처기업가라고 주장하면서도 기존의 재벌처럼 계열사를 문어발처럼 늘렸다.

게다가 관계사를 늘리는데 필요한 자금은 시장에서 투자자들에게 얼마든지 끌어올 수 있다고 믿었다. 작년 4월부터 불기 시작한 ‘코스닥열풍’은 그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는 지난해 10월 값어치를 제대로 따지지 않고 200억원 가량이나 들여 동방신용금고를 사들였다. 자신의 ‘사금고’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9월하순부터 불과 1∼2주일만에 650억원이나 빼간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사채시장에서 급전을 빌리는 것도 불가능해지면서 결국 부도가 났고 그의 ‘벤처재벌’이란 모래성은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나고 말았다.

정사장의 실패는 빗나간 벤처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는 몇몇 벤처사업가가 위험하다는 루머가 끊이지 않았다. 주식시장이 장기침체국면에 들어가 있어 유사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벤처는 한국경제의 앞날을 밝혀줄 수 있는 몇 안되는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번 ‘동방금고 사건’은 그런 벤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잘못된 벤처사업가는 철저하게 응징하되 바람직한 벤처사업가는 더욱 육성돼야 한다. 벤처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선 옥석(玉石)을 철저히 가려야 한다는 것이 이번 사건의 교훈이다.

<홍찬선 금융부>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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