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윤득헌/맞춤아기

  • 입력 2000년 10월 5일 18시 35분


인체의 골수이식 수술이 처음으로 성공한 것은 70년대 초였다. 미국 토머스박사가 오랜 동물실험 끝에 인체 거부반응 등의 문제점을 제거시킨 수술에 성공함으로써 백혈병환자와 재생불량성 빈혈환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불치병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백혈병 치료의 길을 연 토머스 박사는 90년 노벨의학상을 받았다. 지금은 한해에도 수만명이 이식수술을 통해 새로운 삶을 얻고 있다.

▷그렇지만 백혈병은 여전히 난치병에 속한다. 환자와 골수 기증자의 생체조직이 맞아야 이식수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환자가 생체조직이 같은 골수 기증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물론 수술비용의 문제도 만만치는 않다. 어려서 미국가정에 입양돼 공군사관학교를 다녔던 성덕 바우만이 사경을 헤매다 1996년 한 젊은이의 골수 기증으로 건강을 회복한 것은 생생한 예이다. 그가 생체조직이 같은 사람의 골수 기증자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국민의 성원이 큰 몫을 했다.

▷백혈병 환자의 부모가 아기를 출산하는 것도 환자의 생체조직과 같은 골수를 얻기 위한 것이다. 최초는 1990년이었다. 미국 중년부부가 백혈병인 18세 딸과 조직이 같은 사람의 골수를 이식받기 위해 수년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다 실패하자 마지막 수단으로 ‘골수를 공여할 아기’를 임신했고 그 사실을 공표했다. 당시 부모의 ‘목적출산’은 태아가 환자의 생체조직과 다르면 유산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정관복원수술을 한 아버지와 42세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최근 미국에서는 ‘맞춤아기’ 논란이 일고 있다. 유전적으로 골수 결핍과 면역체계에 문제가 있는 팬코니 빈혈증으로 골수이식이 없으면 1년밖에 살지 못하는 6세난 딸을 둔 부모가 역시 아이를 낳은 것이다. 종래의 예와 다른 점은 부모가 모두 팬코니 빈혈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에 15개의 수정란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통해 팬코니 유전자도 없고 생체조직도 같은 수정란을 선택해 아이를 낳고 골수이식을 한 것이다. 이번에도 부모가 태어날 아이의 형질을 결정할 권리가 없다는 주장과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윤득헌논설위원>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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