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문화예산 1조원 넘었다지만

동아일보 입력 2000-09-27 18:57수정 2009-09-22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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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문화예산 1조404억원이란 돈은 전체 정부예산 규모로 보면 1%를 조금 넘는 것이지만 ‘가난한’ 문화계 입장에선 꽤 큰 액수가 아닐 수 없다. 문화관광부 관계자들은 문화예산 얘기만 나오면 자신있는 표정을 내비친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문화예산이 사상 처음으로 정부 예산의 1%를 넘어선 데 이어 내년에는 문화예산 총액이 1조원을 돌파하기 때문이다.

문화예산은 90년대초만 해도 1000억원을 조금 넘는 액수에 전체 정부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0.4% 내외에 불과했기 때문에 지난 1, 2년 사이 크게 증가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문화예산이 충분하다거나 효율적으로 잘 쓰여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문화예산을 따질 때 가장 불만스러운 것은 관광부문 예산까지 포함시키는 것이다. 문화와 관광은 엄연히 성격이 다르므로 분리시켜 계산하는 것이 옳다. 내년도 관광예산은 1900억원이므로 순수 문화예산은 그만큼 줄어든다고 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확보된 문화예산을 어떻게 쓰느냐이다. 문화예산은 당장 성과가 나타나진 않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와 육성이 필요한 분야에도 집행되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순수문화다. 물론 문화산업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뿌리를 이루는 순수문화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으면 문화산업은 큰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순수문화를 둘러싼 국내 여건은 척박하기 그지없다. 국제통화기금(IMF) 쇼크 이후 기반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어느 때보다 순수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배려가 요구되는 시기다.

이 점에서 내년 문화예산안은 미흡하다. 순수예술 활동에 대한 지원은 1조원 가운데 200억원에 불과하다. 박물관 문화회관 등 문화기반시설은 건물을 짓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완공 후 어떻게 내용을 채울지에 대한 방안은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아직 문화예산이 ‘쓸 곳은 많고 돈은 부족한’ 실정임을 고려하더라도 문화정책이 너무 눈에 보이는 것에 치중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를 자아낸다.

문화관광부는 문화예산 1조원 돌파를 놓고 ‘문화정책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내세우고 있다. 이런 ‘자랑’에 앞서 척박한 문화의 토양을 가꾸기 위해 장기적인 정책비전을 세우고 이를 차근차근 실천에 옮기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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