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건영/IMF 경고의 의미

  • 입력 2000년 9월 26일 19시 20분


국제통화기금(IMF)은 체코 프라하에서 열리고 있는 제55차 IMF와 세계은행 연차총회에서 금융위기를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국제적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감시활동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특히 IMF 관리체제를 졸업한 경우에도 IMF에 대한 채무가 일정 규모, 예를 들면 출자지분 이상인 나라에 대해서는 위기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사후감독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IMF의 정책변화가 특별히 한국을 겨냥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IMF는 금융구조가 취약한 신흥중진국을 주요 관찰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한국은 IMF의 사후 감독대상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하고 있는 IMF가 한국의 경제상황과 정부정책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IMF의 감시나 감독이 아니라 한국경제가 다시 심각한 위기에 빠지지 않고 안정적인 성장궤도에 진입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1997년의 위기 이후 3년이 되는 지금까지 지속 가능한 성장궤도에 오르지 못한 채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은 1997년의 경제위기 이후 1년여 동안 국민의 헌신적인 희생과 인내로 외환보유고 증가, 기업구조조정, 금융구조조정 등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로 IMF에 대한 채무를 조기에 상환할 수 있게 되자 정부는 서둘러 경제위기 극복을 선언하고 개혁의 고삐를 늦추었다. 그 결과 개혁은 미완성으로 남게 됐고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얻은 개혁성과는 새로운 부실에 의해 상쇄되었다.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거액의 자금을 금융부실 정리에 투입한 결과 금융시장이 일시 활기를 되찾았으나 국가부채는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정부가 성급하게 위기극복을 선언하고 방심한 사이에 금융불안은 다시 심화되었다. 공공부문의 개혁은 구호에 그치고 말았으며 정부투자기관의 부실한 구조조정과 방만한 경영에 대해 국민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정부가 기업 및 금융 정상화를 위해 이미 투입된 110조원 외에 50조원의 공적자금을 추가로 투입하고 부실기업 정리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은 비록 늦기는 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연초까지만 해도 공적자금은 64조원으로 충분하다고 하던 정부가 실제로 투입한 자금은 총 110조원이었다. 또한 불과 지난 5월 말에 공적자금이 더 이상 필요없다고 강변하던 정부가 이제는 GDP의 11%에 해당하는 거액을 추가로 투입하면 금융부실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을 믿지 않는 국민과 시장을 어떻게 나무랄 수 있는가.

공적자금을 쏟아 붇고 기업 살생부를 만들어 밀어 붙이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과 시장의 신뢰가 필수적이다. 구조조정에 투입되는 자금은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사용돼야 하며 정책담당자는 성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부실기업 정리에 따른 실업의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되 불가피한 부담은 과감하게 짊어지고 나갈 각오를 해야 한다. 구조조정을 지연시켜 실업발생을 억제하는 것보다는 실업자에게는 생계 유지에 필요한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면서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국민경제의 생산성을 높이고 성장을 촉진해야 한다.

금융시장의 경색이 장기화하고 정부정책에 대한 국민과 시장의 신뢰가 무너짐에 따라 한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어온 제2의 경제위기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금융부문의 부실이 실물 부문으로 확산돼 한국경제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여야 정당은 소모적인 정쟁을 중지하고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하며 국가경제의 부담능력을 넘어서는 복지정책은 당분간 뒤로 미루는 것이 좋다. 경제회복을 위해 남북관계를 포함한 국가정책의 우선 순위를 근본적으로 재조정하고 국가의 역량을 집중하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윤건영(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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