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의료계 장기파행, 병원들도 "숨 넘어 간다"

  • 입력 2000년 9월 20일 19시 03분


3“지난달 상여금이 나오지 않자 병원직원 공제회에서 생활비를 빌리려는 신청자가 줄을 섰었다. 내 경우 대출금 이자와 적금이 50만원, 두 아이의 교육비가 35만원 정도 나가는 데 상여금 70만원이 나오지 않아 당황했다. 25일 이달 월급이 나오지 않을까봐 불안하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생활해야 할 것 같다.”

중앙대병원의 일반사무원 김모씨(32·여)의 토로다.

3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는 의료계 파행으로 병원들이 직원들에게 급여를 못 줄 정도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이 여파로 제약업과 의료장비산업도 휘청거리고 있다.

대한병원협회의 조사결과 6월 20∼26일의 1차 파업과 8월 7∼20일의 2차 파업 기간 전국의 100병상 이상인 279개 병원에서 모두 2937억원의 진료비 손실이 생긴 것으로 집계됐다.

이 협회 성익제(成益濟)사무총장은 “9월까지 손실액을 누적해 계산하면 적어도 6000억원”이라며 “300병상 안팎의 중소병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병원이 부도위기에 처했다고 볼 수 있으며 대학병원급이 특히 어렵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선 수도권의 4, 5개 대학병원이 곧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경영압박을 받고 있다는 얘기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의료보험 급여 정산에 보통 2, 3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의료계 파업 전 청구한 비용으로 버텨 왔지만 곧 부도사태가 닥친다는 것이 의료계의 전망이다.

대부분의 병원은 지금까지 월급은 간신히 메워왔지만 이번 추석 보너스를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다.

가톨릭의료원 소속 8개 병원은 직원 8000명에게 추석보너스 30만원을 주지 못했다. 연세대의료원은 15일 직원의 상여금 100% 중 반만 지급했으며 인천의 길병원도 추석보너스를 절반만 지급했다.

대부분의 병원은 이달부터는 월급 지급 여부를 놓고 비상간부 회의를 잇따라 열고 있다.

일부 병원에선 수입감소로 인한 고육책으로 비용절감을 위해 간호사나 사무직원들에게 무급휴가와 연월차를 강제로 보내고 있어 노조와 갈등을 빚고 있다.

연세의료원에는 ‘의사가 파업을 하는데 왜 생계가 빠듯한 간호사와 사무직원이 짐을 져야 하나’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었고 가톨릭의료원 산하 3개 병원과 전북대병원 등의 노조는 임금을 체불한 병원을 노동부에 고발했다.

제약업계도 비상이다. 제약업의 한 해 시장규모는 4조2000억원 정도. 업계에선 의약분업 실시 전 분업이 실시되면 매출액이 20% 정도 줄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료계 파업으로 타격이 더 심해졌다.

지난달 20일 우황청심환 솔표위청수 쌍감탕 등을 만드는 조선무약이 부도처리됐으며 국내 30대 제약회사에 속하는 3, 4개 회사가 부도설에 휩쓸리고 있다.

여기에다 대형병원이 수입감소를 이유로 각종 비용 지불을 미루고 있어 의료장비산업도 주름이 지고 있다.

내시경 X레이장비 등을 병원에 공급하고 있는 J사는 지난달 병원으로부터 20여억원을 받아야 했지만 5억원 이상을 받지 못하는 등 관련 업체가 자금압박으로 줄지어 도산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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