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훈 기자의 백스테이지] 'DJ DOC'의 아름다운 재기

  • 입력 2000년 9월 16일 11시 12분


9월4일 서울 양평동의 아트하우스. CF 촬영현장에서 만난 'DJ DOC'는 5년만의 광고 출연에 무척이나 흥분된 표정이었다.

노랑머리를 삐삐처럼 따 올린 정재용. 코끼리 모양의 팬티를 자랑하는 이하늘. 인터넷 게임 '디아블로 2' 관련서적을 읽으며 "한번도 진 적이 없다"고 자랑하는 김창렬. 예나 지금이나 모두들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현장을 지켜보던 기자에게 정재용은 무슨 까닭에선지 묻지도 않은 말을 건넸다. "겉으로는 까져 보이죠, 우리? 하지만 속은 여려요." 옆에 있던 이하늘이 거들었다. "우린 가식적이진 않잖아요. 솔직하죠". 팬들이 'DJ DOC'를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이런 당당한 모습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DJ DOC'가 사랑을 받는 진짜 이유는 음악에 대한 진지한 열정' 때문일 것이다. 기자가 보기에 'DJ DOC'는 자기들만의 개성이 담긴 음악을 만들기 위해 '끙끙대는' 그런 뮤지션이다. 이번 5집 'The Life DOC Blues'를 내놓을 때도 그랬다.

'디지탈 미디어'란 음반사로부터 20억원의 계약금을 받고 새 앨범 제작에 들어간 것이 97년. 경쾌한 댄스곡 'DOC와 춤을' 내놓으면서 '국민가수' 대접을 받던 이들은 새 앨범 작업이 그렇게 오래 걸릴지 자신들도 몰랐다.

4분 짜리 노래 10곡을 담을 때 대개 4백분 정도 녹음하는 게 가요계의 관행임에도 'DJ DOC'는 장장 1540 시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녹음하는데 바쳤다.

얼추 음반 2장은 채울만한 30여곡이 만들어졌지만 연일 재녹음을 거듭했다. 자신들이 원하는 노래가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수퍼맨의 비애'(94) '머피의 법칙'(95) '미녀와 야수' '여름 이야기'(96) '삐걱 삐걱'(97) 등 해마다 히트곡을 선보였던 'DJ DOC'였기에 새 음악에 대한 부담은 그만큼 컸다.

함께 작업하면서 수많은 노래를 갈아업는 이들을 지켜본 뮤지션 남궁연 씨는 "괜찮은 음악인 것 같은데도 계속 '다시 녹음하자'고 해서 미칠 지경이었다"고 회상했다.

녹음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자연히 빚은 쌓여 갔다. 사용료를 내지 못해 핸드폰이 끊길 정도로 배고픈 생활을 해야 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뤄지던 새 앨범이 나왔을 때도 제작사는 "가사가 너무 직설적이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5집은 그런 우려를 깨끗이 씻으며 각종 음반 순위 차트를 석권했다. 직설적인 가사 탓에 '18세 미만 청취불가' 딱지가 붙었음에도 80만장이 넘는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며 멋지게 재기에 성공했다. 가요시장이 반짝 스타들로 넘치고 쉽게 싫증을 느끼는 팬들이었지만 공을 들여 뽑아낸 디스코와 펑키 음악을 냉대할 순 없었던 모양이다.

기자는 94년 초 데뷔하기 직전 'DJ DOC'(당시는 정재용이 아닌 다른 멤버였다)를 어느 카페에서 만난 적이 있다. 즉석에서 노래와 춤을 선보인 그들은 댄스 그룹 답지 않게 라이브 실력이 뛰어났다. 그때의 패기를 여전히 지닌 채 자기 음악에 책임을 지려는 모습을 보면서 기자는 다시 한번 이들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됐다. 모쪼록 파격과 도전정신을 담은 'DJ DOC'의 음악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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