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of the week]노바소닉 'Novasonic 2'

  • 입력 2000년 9월 14일 10시 48분


◇ 축복 받은(?) 세상을 비추는 반사경

'새로운 소리(Nova + Sonic)'라는 이름으로 99년 결성된 노바소닉이 지난 해에 이어 두 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전작에 이어 이들은 프로그레시브 메탈과 랩 코어가 결합된 사운드를 유지하고 있지만 밴드의 이름에 걸맞게 전작에서 진일보한 새로운 시도를 더한다.

노바소닉 사운드의 핵심은 넥스트 시절 신해철과 함께 김세황, 김영석, 이수용이 보여줬던 프로그레시브 사운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바소닉이 지닌 프로그레시브적인 요소는 넥스트(N.EX.T) 시절에 비해 한결 메탈 사운드에 근접해 있다. 넥스트가 만능 인스트루멘탈리스트 신해철로 하여 신디사이저가 사운드의 중심이 됐다면, 노바소닉은 발군의 테크니션 김세황이 그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보다 강한 기타 사운드를 들려주며, 때로 이것은 스래시 메탈 형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는 드림 씨어터(Dream Theater)가 프로그레시브적인 사운드에 메탈리카(Metallica)의 스래시 메탈을 절묘하게 결합한 형태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드림 씨어터가 그 위에 감성적인 멜로디를 입혔다면 노바소닉은 김진표의 랩을 결합한다. 그리하여 노바소닉 사운드 저변에는 프로그레시브 메탈 사운드가 흐르지만 표면적으로는 랩코어의 형태를 띠고 있다. 실험적인 사운드는 자칫 대중과 거리를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 될 수 있지만 김진표의 랩은 노바소닉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주요한 매개가 된다. 지금의 록 씬에서 젊은 세대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것은 그 무엇보다도 하드코어, 혹은 랩코어이기 때문이다. 즉, 김진표의 랩은 노바소닉의 음악에 신세대적인 감각을 더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김진표의 랩(래핑+작사)은 그가 이미 두 차례 선보인 그의 솔로 앨범에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지만 노바소닉에서 만나는 그의 랩은 전혀 다른 것이다. 패닉에서 보여준 맛뵈기 랩이나 그의 솔로 앨범에서 보여준 힙합과 팝 사운드의 듣기 편한 김진표의 랩은 노바소닉의 환경에 최적의 적응력을 보여준다. 김세황이 패닉과 함께 공연을 하며 김진표의 랩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의 랩이 노바소닉의 사운드에 적절하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의 확신대로 노바소닉에서 만나는 김진표의 랩은 우리 말로 된 랩이 하드코어 사운드와 훌륭하게 어울릴 수 있음을 확인케 한다.

작사를 전담하는 그가 만들어내는 랩은 라임을 만들어내기 결코 쉽지 않은 우리 말도 충분히 리듬감을 살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중 특히 감탄할 만한 것은 우리의 비속어들이, 이미 익숙해진 영어의 그것에 손색 없이 과격한 분노의 상태를 충분히 표현해낸다는 것. 본작의 'Jr.'과 '퍽도 잘 났겠지'는 우리의 비속어가 지닌 잠재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다. "니돈 갖고 개겨봐. 부모 돈 갖고 낍치지마. 네 힘 갖고 싸워봐. 부모 백 믿고 개기지마."('Jr.' 中)이나 '뻥이야, 뻥이야, 전부다 모조리 뻥. 뻥이야, 무조건 뻥이야."('퍽도 잘 났겠지' 中)과 같은 비속어들은 곡의 흐름 속에서 부자연스러움이 전혀 없다. 이는 화려한 세상의 이면을 향한 김진표의 비웃음과 조롱, 때로는 분노와 공격적인 태도가 헤비한 사운드와 어울려 통쾌함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 통쾌함은 본작을 관통하는 하나의 테마다. 전작에서 김진표는 '태양의 나라'를 통해 세기말의 불안과 종말론을 소재로 암울한 시대상을 조명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세상'을 통해 살맛 나지 않는 세상을 반어적으로 노래하고, '알', '서툰 여유', '집에 오던 길'을 통해 거친 사회에 대한 괴리감과 그로부터 나타나는 광기의 지배를 드러낸다. 이러한 김진표의 태도는 본작에서도 변함없이 견지 되는데, 'Jr.', '퍽도 잘 났겠지'와 더불어 'The Fiction'은 가장 노골적인 가사로 통쾌함을 선사하는 곡이다.

김진표의 가사가 전작과 달라진 점이라면 사회 부적응으로부터 나타나는 내면 세계의 고독과 인간관계의 괴리감을 좀더 밀도 있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 'eos', '뛰어봐'가 전자에 해당된다면, '지똥별 사춘기 왕자의 춤사위', '어느 새벽, 눈을 감을 때'는 후자에 속한다. 후자의 경우는 연인의 사랑을 소재로 한 노래라 할 수 있지만 김진표의 사랑은 외부적 환경으로 인해 파멸돼가는 사랑이다. 이러한 김진표의 가사는 김세황, 김영석, 이수용이 만들어내는 헤비한 사운드와 결합돼 더욱 공격적으로 들린다. 'Jr.'에서 김세황의 날카로운 기타 리프, 쉴새 없이 이어지는 김진표의 래핑은 '미친 듯이 돈 나라'에 대한 분노이며, '퍽도 잘 났겠지'에서 조롱 섞인 듯한 펑키(Funky) 리듬과 장난스럽게 들리는 래핑은 '퍽도 잘 난 세상'을 향한 조소와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본작을 통해 노바소닉이 사운드 면에서 새롭게 보여주는 모습은 무엇인가. 본작의 오프닝 곡 '진달래꽃'은 노바소닉 전곡을 통틀어 가장 독특한 곡이라 할 수 있다. 이 곡은 노바소닉이 전작에서 보여준 '태양의 나라'에서의 클래시컬한 곡구성과 '알'에서의 이국적인 향취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독특하게도 김소월의 시 '진달래' 전문을 가사로 삽입한다.

그 때문에 이 곡은 다른 곡들과 달리 사회 비판적인 내용이 아닌 전형적인 사랑의 노래가 된다. 그러나 김소월의 시를 소재로 한 만큼 그 사랑은 다분히 고전적인 뉘앙스를 띤다. 이러한 고전적인 분위기를 위해 노바소닉은 중국 전통 악기를 곡 전반에 배치하고 티벳 전통 음악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중국 뮤지션 사주(Saju)의 신비감에 싸인 보이스를 결합시킨다. 고전(전형)적인 소재와 동양적인 분위기는 김진표의 재빠른 랩, 김세황의 헤비한 기타와 부조화의 조화를 이뤄내 장엄한 사운드를 연출, 독특함을 만들어 냈다. '진달래꽃'에서 김소월의 시로부터 가사와 사운드가 완성됐다면 '지똥별 사춘기 왕자의 춤사위'와 'Slam'은 기존의 곡으로부터 음악적 소재를 빌어온다. 이들은 '지똥별 사춘기 왕자의 춤사위'에서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을 인용하는데 그 덕에 이 곡은 다분히 고딕적인 메탈 사운드를 띤다. 마지막에 수록된 'Slam'은 버글스(Buggles)의 'Vidoe Killed The Radio Star'를 인용해 그에 걸맞게 경쾌하면서도 헤비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이 곡에서 김진표가 'Vidoe Killed The Radio Star'를 삽입한 것은 음악인로서만이 아닌 사생활까지 드러내놓고 살 수밖에 없는 그들의 심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라 여겨진다.

'진달래꽃', '지똥별 사춘기 왕자의 춤사위', 'Slam'과 함께 노바소닉의 새로운 시도는 'eos'에서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이어진다. 'eos'는 전반부의 드럼앤베이스(Drum & Bass) 혹은 트립합 사운드와 코러스 부분의 펑키 사운드가 결합된 독특한 곡. '유혹' 역시 독특한 구조의 곡으로 전반부가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어쿠스틱 사운드가 결합됐다면 중반부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의 톰 모렐로(Tom Morello)의 기타 패턴을 연상케 하는 하드 코어 형태를 취한다. 6분이 넘는 대곡 지향의 'The Fiction'은 이들이 지닌 슬래시 메틀 사운드를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곡. 메탈리카(Metallica)의 [S&M]을 연상시키는 강한 스래시 메틀 기타와 오케스트레이션이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프로그래밍된 김영석의 오케스트레이션과 김세황의 기타 플레이는 극치에 이르러 6분을 훨씬 뛰어넘는 보다 장대한 인상을 남긴다.

'The Fiction'의 장엄한 사운드가 끝을 맺으면 이어지는 '어느 새벽, 눈을 감을 때'는 넥스트에서 보여준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분위기와 유사하지만 그와 무관하게 김진표의 묵직한 나레이션과 김성면(K2)의 코러스, 김세황의 애수어린 기타로 우리의 감성에 공명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한 곡이다. 그렇기에 이 곡이 본작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가장 적절한 곡일 듯 싶지만 노바소닉은 이어지는 'Slam'에서 분위기를 완전히 반전시켜 버린다. 전작에서 '진심'의 고요함을 '또 다른 진심'이 뒤엎어버렸던 노바소닉답다.

노바소닉은 각 멤버 네 명이 다른 곳에서 보여줄 수 없었던 그들의 남다른 음악적 욕구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해우소와도 같다. 그러나 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그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 이들 네 명이 들어앉기에 딱 알맞은 것이다. 그렇기에 본작에서는 김영석과 함께 김진표, 김세황이 작곡에 참여해 보다 탄탄한 팀웍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결과는 빈틈없는 사운드로 드러난다.

혹자는 이들의 음악이 기존 사운드의 조합이나 모방이라고 지적할지 모른다. 그러나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소리가 없을 익스트림 뮤직의 시대에 노바소닉은 그 조류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들은 장르를 막론하는 대신 노바소닉의 정체성이 살아있는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다. 만약 이들의 음악에서 다른 누군가의 흔적을 발견했다 해도 그것 역시 노바소닉의 정체성으로 녹아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노바소닉의 흐트러짐 없이 밀도 있는 사운드가 이를 대변한다. 이 짜임새 있는 사운드는 우리를 흥분 속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사운드는 이유 없는 과도한 감정의 분출이 아니다. 이들은 축복 받은 세상을 거꾸로 뒤집어 때론 조소를 보내고 때론 분노한다. 세상을 뒤집어 바라보는 반사경이야말로 곧 노바소닉이 지닌 음악의 핵심인 것이다.

조은미 jamogue@tubemusic.com

기사제공 : 튜브뮤직 www.tubemus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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