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Digital]한국법 영문사이트운영 유혜자교수

  • 입력 2000년 9월 7일 18시 36분


미국 중부의 대도시 세인트루이스에서 미시시피강을 건너 동남쪽으로 120마일 떨어진 곳,시골 국도를 따라 자동차로 2,3시간 달리면 일리노이주 남부 인구 5만의 소도시 카본데일이 나온다. 무명법률가 시절의 링컨이 순회재판관을 따라 말 등에서 졸면서 떠돌아다녔다는 곳, 이름 그대로 한때 탄광지대로 유명했고 지금은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진 한적한 곳.

이곳에서 ‘한국 법의 세계화’가 이뤄지고 있다. 이 소도시에 자리잡은 남일리노이주립대학(SIU) 로스쿨 도서관의 유혜자(56·여)교수가 한국 법에 관한 영문 인터넷 사이트(Korean Legal Research Resources on the Internet, www.siu.edu/offices/lawlib/koreanlaw)를 운영하고 있다.사이버 공간에서 외국인에게 영문으로 한국 법을 안내하고 설명하는 유일한 곳. 유교수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이 사이트를 꾸려가고 있다.

이 사이트를 방문하면 맨먼저 태극기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첫 화면에는 사이트 소개와 함께 한국 법의 연혁과 특징, 내용에 관한 개괄적인 설명이 시작된다. 이어 최고규범인 헌법에 대한 소개와 함께 국회에서의 입법절차, 사법제도, 법학교육 등을 설명한다. 한국의 법령과 판례, 출판물 등에 관한 정보도 곁들여 있다.

사이트의 가장 큰 장점은 한국의 중요한 법률 사이트를 언제든지 연계해 검색할 수 있도록 링크시켜 놓았다는 점. 대법원과 법무부 법제처 국회 청와대 총리실 그리고 주요 법과대학의 홈페이지와 사설 법률사이트를 모두 연결시켜 놓았다. 외국인들은 이곳에만 들어오면 한국 법률정보를 찾기 위해 어느 곳이든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

유교수는 지난달 18일 사이트를 전면 개편해 새롭게 단장했다.

사이트가 개설된 뒤 외국인들로부터 많은 반응이 있었다. 미국 뉴욕과 워싱턴의 유수한 로펌들은 영문으로 된 한국 투자관련법령을 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문의해왔다.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 주립대학(UW)로스쿨 도서관의 동아시아법 책임자인 윌리엄 맥클로이는 지난해 8월 SIU 로스쿨 도서관 책임자인 프랭크 후덕 교수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외국인들이 한국 법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사이트”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또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한 교수는 “외국인들이 한국 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놀라운 것은 유교수가 이곳 외국인들에게 ‘한국 법의 전도사’로 불리지만 법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은 없다는 점. 그는 69년 숙명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에 왔다. 처음에는 SIU의 도서관 사서로 출발, 책을 나르고 정리하는 힘든 일을 했다.

그는 73년 신설된 SIU 로스쿨로 자리를 옮겼다. SIU로스쿨은 변호사가 거의 없는 ‘무변촌’인 남일리노이 지역의 법률서비스 향상을 위해 일리노이 주정부의 특별지원으로 설립됐다. SIU측에서는 유교수의 성실성과 재능을 인정해 신설된 로스쿨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과 기능을 하는 도서관을 맡겼다. 그는 80년 인디애나 주립대 대학원에 진학, 도서관학 석사학위를 땄다. 이어 강사(Instructor)와 조교수 부교수를 거쳐 지난 7월 로스쿨 라이브러리의 정식 교수(Full Professor·미국에는 도서관에도 정식 교수의 직위가 있음)가 됐다.

유교수는 미국 로스쿨 라이브러리 책임자들의 연례회의 등에 참석하면서 한국 법에 관한 자료가 빈곤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한국 법 관련 자료와 정보의 부족을 호소했다.

그는 95년 안식년휴가를 받아 6개월동안 서울대 법대 도서관에서 연구하면서 인터넷을 활용한 한국 법 알리기에 나설 결심을 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인터넷 붐이 일기 시작하던 때였다. 유교수는 한국 법 자료를 수집, 일일이 영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또 대법원과 법무부 등 한국 법률 관련 인터넷 홈페이지를 방문해 샅샅이 검색, 98년 9월 최초의 한국법 영문 사이트를 개설했다.

유교수는 “한국을 오래 전에 떠나온 내가 고국에게 조그만 기여를 할 수 있는 길을 찾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시대에 법적 관할과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법이 전세계의 ‘공용어’가 되는 경향이 있다”며 “한국 법을 알리는데 개인의 노력과 역량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나 사법부가 나서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교수의 연락처와 이메일 주소는 (618)453―8781, hryoo@siu.edu

<카본데일〓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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