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제균/뒷북 친 '수지여사 응원'

  • 입력 2000년 9월 5일 18시 51분


갸름한 얼굴에 가냘픈 몸매. 50대 중반이지만 아직도 소녀티가 나는 한 미얀마 여성에게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아웅산 수지 여사(55). ‘미얀마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웅산 장군의 딸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된 여성이다. 그녀에 대한 미얀마 군사정부의 폭압에 또다시 전 세계가 분노하고 있다.

수지 여사는 지난달 24일 자동차를 타고 수도인 양곤 밖으로 나가려다 달라라는 지역에서 군사정부가 보낸 사람들에 의해 제지당했다. ‘자동차 농성’에 돌입한 수지 여사는 9일째인 1일 밤 경찰에 의해 강제로 귀가 조치됐다. 그녀에 대한 미얀마 당국의 억압에 세계 각 국과 유엔, 그리고 국제인권단체들이 일제히 비난 성명을 토해냈다. 영국정부는 4일 단교 수준 다음의 항의 표시인 미얀마 주재 대사 소환령을 내렸다.

수지 여사의 투쟁은 70, 80년대 우리의 민주화 투쟁을 생각나게 한다. 그녀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은 90년 미얀마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었으나 군사정부는 ‘국헌 수호’라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명분으로 새 국회 구성을 거부했다. 국보위를 연상시키는 ‘국가평화발전위원회’가 야당 인사들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것도 우리의 과거와 비슷하다.

동병상련 때문인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수지 여사의 투쟁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수지 여사도 김대통령의 저서 ‘김대중의 옥중서신’ 스웨덴 판에 “인류애에 뿌리를둔 종교적 정치적 원칙들에 대한 헌신을 보여준다”는 서문을 쓸 정도로 김대통령과 교감을 나누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관심은 어쩐지 미약해 보인다. 외교통상부는 수지 여사의 농성 사태가 발생한 지 보름이 지난 5일에야 미얀마 정부를 비난하는 논평을 냈다. 그녀의 외로운 투쟁에 한국 정부와 국민이 좀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한국이 인권과 민주화 분야에서 후진국이 아니라면 외국의 민주투사에게 그 정도의 배려는 해야 할 것이다.

박제균<국제부>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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