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명건/검찰수사 말따로 몸따로

  • 입력 2000년 8월 28일 18시 55분


28일 대검 회의실에서 검찰 간부 173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전국검사장회의에서 중점적으로 논의된 사항 중 하나는 사회지도층의 비리 등 부정부패 사범에 대한 수사 강화였다.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은 “원칙과 정도(正道)에 따라 공평무사하게 법을 집행하는 것이 검찰의 임무”라며 “반부패 특별수사활동을 강화해 사회기강을 확립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회의는 올 1월 열린 전국검사장회의의 재판(再版)에 가까웠다. 그 때는 김정길(金正吉)법무부장관이 훈시를 통해 “강한 자의 비리와 불법에 법이 엄정하게 집행되면 국가와 사회의 기강을 바로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두 차례의 전국검사장회의 사이에 있었던 주요사건에 대한 검찰수사를 돌이켜 보면 ‘수사(修辭)와 수사(搜査)’ 사이에 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말로는 똑바로 가야한다고 다짐하면서 걸음은 게걸음을 하는 모습이랄까.

검찰은 6월초 불거진 동아건설의 4·13 총선 정치자금 살포사건 수사를 2개월이 넘도록 뭉그적거리고 있다. 당시 검찰은 10억원대의 정치자금 제공 혐의를 받고 있는 동아건설 고병우(高炳佑)회장 등 4명을 ‘6월 남북정상회담’이 끝나면 소환 조사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정상회담이 끝난 뒤 이 사건 수사는 실종돼 버렸다.

또 지금 한빛은행 거액 편법대출 사건과 관련해 대출과정에 외압이 있었는지 여부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검찰은 수사에 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정 관계 인사가 직간접적으로 연루됐다는 의혹이 있다는 점이다.

아예 말이나 하지 말든지. 검찰이 말로는 ‘공직자 및 사회지도층 비리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비리수사를 통한 사회기강 확립’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강자’의 눈치를 보는 행보를 되풀이한다면 바로 그 점이 사회기강을 해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이명건<사회부>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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