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칼럼]부시 감세안 부유층만 혜택

  • 입력 2000년 8월 20일 18시 38분


미국 앨 고어 부통령은 민주당 대통령후보 수락 연설에서 경쟁자인 조지 W 부시 공화당 대통령후보의 공약에 관해 언급하면서 ‘위험한 것’이라고 묘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어는 향후 10년간 1조달러(약 1100조원)의 세금을 감면하겠다는 부시후보의 구상에 대해서는 경고하고 있다. 부시의 감세안은 부유층만 이롭게 하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고어는 진실을 얘기하고 있는가. 한마디로 말해 그렇다.

선거감시 단체인 ‘조세 정의를 위한 시민’은 부시의 구상이 얼마나 부유층을 이롭게 하는것인지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전체 감세혜택의 절반 정도는 연 평균소득이 25만달러(약 2억7500만원)이상인 가구에 돌아간다. 1%의 소득 상위계층에 주어지는 혜택이 중산층이 누릴 혜택의 100배다. 1년에 8만달러(약 8800만원)를 버는 가정은 매주 20달러, 100만달러(약 11억원)를 버는 가정은 매주 1000달러의 혜택을 받는 것이다.

이에 반해 고어의 감세안은 몹시 복잡하지만 소득규모 보다 납세의 성실성에 초점을 두고 있어 중하위층에 더 많은 혜택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공화당의 부시후보는 유권자의 95%를 도외시하는 정책을 어떻게 생각해 냈을까.

첫번째 대답은 고전적인 것으로 ‘부(富)는 더 많은 사람에게 부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결국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이른바 공급자 보상 원칙에 기초한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장기 호황을 누리고 있어서인지 현재의 세금수준이 기업활동을 할 기분이 들지 않을 정도로 과중하다는 얘기는 최근에 들어본 적이 없다.

두번째 대답은 ‘부는 움직이는 것이므로 결국 어느 계층의 세금을 감면해도 마찬가지’라는 이론이다. 지난주 월스트리트 저널지에 보도된 2개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현재의 하위 소득계층 가운데 20%는 10∼15년 뒤 상위 20%에 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을 많은 경제학자가 비판한 바 있다. 시카고대의 케빈 머피 교수는 “대학서점에서 시간제로 일하던 청년이 안정된 직장을 얻어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렇지만 믿을 수 있는 많은 연구에 따르면 대다수 미국인의 소득 수준은 시대가 달라지면 바뀌나 극에서 극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결국 감세안이 현재 당신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10년 뒤에도 역시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중산층을 위한 감세안과 부유층을 위한 감세안. 유권자는 이 둘 가운데 하나를 명확하게 선택해야 할 것이다.

<정리〓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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