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동물의 사생활]동물들의 '사랑' 그 험난한 여정

  • 입력 2000년 8월 4일 18시 25분


▼'동물의 사생활'/존 스파크스 지음/까치/김동광 황현숙 옮김/303쪽 1만2000원▼

번식은 동물의 본성이다. 그렇지만 섹스가 불가피하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동물에게 섹스란 무척이나 복잡한 과정이며 성가신 일이다. 게다가 수명을 단축할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중노동’이다. 똘똘한 자식을 만들어줄 섹시한 파트너를 차지하기 위해 사투도 벌여야 한다.

그런데 왜 상대가 필요 없는 무성생식을 하지 않을까. 섹스의 ‘쾌락’ 때문이라고? 시도 때도 없이 발정하는 것은 인간 밖에 없다. 저명한 동물학자인 저자는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섹스를 지속하는 이유를 설득력있게 살핀다.

우선 물고기, 조류, 포유류 등 다양한 생물들이 번식 가능성을 높이기위한 다양한 전략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정자와 난자 수의 차이에 기인하는 암수 기회의 불균형 때문이다.

무한대의 정자를 보유한 수컷은 본능적으로 더 많은 암컷을 원한다. ‘힘’ 센 챔피언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코끼리바다표범은 우락부락하게 몸집을 불리고, 사슴벌레는 날선 머리뿔로 상대를 제압한다. 하지만 제한된 난자를 가진 암컷은 수컷 고르는데 까다롭다. 이 때문에 수컷은 갖가지 방법으로 ‘섹스 광고’를 벌여야 한다. 화려한 깃털(공작새,극락조) 일수도, 빼어난 노래솜씨(마나킨새) 등등.

동물마다 성 관계의 전략이 다양한다. 교미중 암컷이 떨어지지 않도록 성기에 바늘이 달린 호랑이, ‘포신’이 둘 달려 혼숙이 가능한 물뱀, 빨대 같은 페니스로 암컷의 몸에서 다른 수컷의 정액을 제거하는 실잠자리, 25kg에 2m 가까운 ‘물건’을 가진 코끼리…. ]

이들은 어렵게 섹스에 성공한 뒤에도 대개 바람을 피운다. 더 많은, 더 좋은 파트너를 찾아서. 부정과 배신 등 성적 ‘야바위’는 불륜이 아니라 자연적 현상이다.

긴 여정을 끝내고 마지막장 ‘왜 섹스를 하는가’에 오면 처음 질문에 대한 해답을 준비한다. “유성생식 과정은 지구상에서 가장 창조적인 힘”이다. 섹스의 다양성은 생물이 꽃 피운 문화 그 자체다. 다양한 성적 결합방식이 지구상에 무수한 종의 번식을 가능하게 했다.

한가지 유념할 것. 동물의 섹스를 인간의 성관계로 추론해버리는 오독이다. 올초 미국 생물학계는 진화생물학자 손힐(Thornhill)의 ‘강간의 자연사’란 책으로 시끌벅쩍했다. 먹을 것으로 암컷을 유인해 교미하는 초파리가 음식이 없을 경우 ‘강간’을 불사한다는 실험 내용을 소개한 것까지는 좋았다. 이를 근거로 남성의 강간이 ‘본능’이라고 주장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에대해 한 여성학자는 이렇게 일갈한 바 있다. “인간이 파린가?”.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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