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대중문화 째려보기]이현세 선생님께

  • 입력 2000년 7월 23일 19시 17분


이현세 선생님께

힘드시죠?

예술가는 자신의 영혼을 작품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증명해야만 할 때 치욕을 느낍니다. 몇 번 그런 치욕을 맛본 적이 있는 저로서는 이번 결정이 큰 상처로 남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역시 대가답게 곧바로 항소를 하시겠다더군요. 기뻤습니다. 치욕은 피한다고 조심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부셔버려야만 하는 것이니까요.

선생님의 작품을 교과서처럼 읽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행복의 다른 이름들. <공포의 외인구단>, <지옥의 링>, <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 <아마게돈>, <남벌>. 그것들은 두툼한 소설 이상의 감동을 주었습니다.

바구니에 삶은 달걀이 담겼고 삐걱대는 탁자 위에 컵라면이 좌우로 정열한, 아무리 대걸레질을 해도 퀴퀴한 냄새를 지울 수 없던, 그 만화방 한 구석에서 저는 삶의 가벼움과 그 속에 깃든 우수를 고행석 선생님의 불청객 시리즈를 통해 배웠고, 땅에 떨어진 강호의 도리를 부여잡고 처절하게 싸우는 인간의 운명을 이재학 선생님의 추혼 시리즈를 통해 배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작품을 읽으며 인간의 가학적이면서도 피학적인 욕망과 그 욕망을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함을 배웠습니다.

<아마게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드셨다가 큰 낭패를 보기도 하셨지요? 그래도 선생님은 굴하지 않고 파워인터뷰에 나오셔서 한국만화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노라 공언하셨습니다. 제게는 <천국의 신화>가 바로 그 헌신의 첫 증거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천국의 신화>를 무조건 칭송하는 것은 아닙니다. 등장하는 신화들의 대부분이 중국의 것이라는 점은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번 판결을 장선우 감독의 영화 <거짓말>의 상영과 비교하며 형평성을 논의할 수도 있겠지요. 벌써 그런 시론들이 몇 편 나온 걸로 압니다. 그러나 저는 상대적인 비교평가에 앞서서, 하나의 작품을 음란하다고 말하는 그 판결의 음란성에 주목하려 합니다. <천국의 신화>가 음란하다는 것은 곧 청소년에게 성적 자극을 줘서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 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장삿속으로 만화를 그리지 않았느냐는 것이지요.

서울지법 김종필 판사의 판결은 겉으로는 이 땅의 청소년을 음란물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처럼 비치지만, 사실은 이현세 선생님을 예술가가 아니라 장사꾼으로 단정지은 것입니다. 치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중예술가들에게 심심찮게 쏟아진 비난이었지요. 기껏 예술품을 만들어놓으면 그 위에 장사꾼의 논리를 갖다대는 겁니다. 물론 대중예술이라는 것이 대중의 호응이 없으면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천국의 신화>처럼, 선생님의 작가 인생을 걸고 도전한 작품을 장삿속으로 내돌리다니요? 선생님을 길거리의 누드빵 장수와 똑같이 취급하다니요?

장사를 할 요량이었다면 청소년판 따윈 만들지 않았겠지요. 지금이라도 당장 만화방에 가면 성인만화와 무협지를 실컷 읽을 수 있으니까요. 또 설령 작은 이익을 위해 청소년판을 만든다고 해도 검찰과 마찰을 빚을 수 있는 부분들을 삭제했겠지요. 이런 게 바로 장삿속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선생님은 우직하게도 원시사회를, 그 생존의 정글을 그대로 재현하셨더군요. 법원에서 문제로 삼은 몇몇 장면들은 오히려 선생님의 타협하지 않는 예술가로서의 양심을 대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100권으로 기획되었던 <천국의 신화>를 꼭 완성시켜 주세요. 질적인 수준 못지 않게 양적인 무게 또한 작품을 논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니까요. 그때가 되면, <토지>나 <태백산맥>과 같은 대하소설을 비평할 때와 마찬가지 심정으로 <천국의 신화>에 대한 긴 글을 쓰고 싶네요.

아, 이 모든 것이 한 여름밤의 악몽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가 김탁환(건양대 교수) tagtag@kytis.konyang.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