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독일과 일본의 ‘사죄’

  • 입력 2000년 7월 14일 18시 21분


독일 하원은 6일 나치 치하에서 강제노동을 당한 사람들에게 50억달러를 배상하는 법안을 556대 42라는 압도적인 표 차로 통과시키고 전쟁 범죄를 사죄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12일 체결된 국제배상협정 협상대표였던 오토 람스도르프 전 재무장관은 배상법안 표결에 참여하는 의원들에게 “여러분의 결정은 과거를 망각하지 않게 하고 이러한 잔학 행위가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 미래를 보증해줄 것입니다”라고 연설했다.

▷배상기금의 절반은 3000여개 기업들이 모금을 하는데, 2차대전 후 설립돼 법적으로 아무런 책임이 없는 회사들도 참여한다. 비록 과거에 대한 부담은 없지만 미래를 새롭게 건설하는 몫을 다해야 한다는 이유다. 다임러크라이슬러 도이체방크 지멘스 폴크스바겐 등 대기업은 물론 종교단체까지 나섰다. 독일의 양심이라는 노벨상 수상작가 귄터 그라스는 배상기금 마련을 위해 전국민이 20마르크 내기 운동을 전개하자고 호소했다.

▷나치독일이 유럽에서 한 짓 이상으로 일본은 아시아에서 반인류의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한국 중국 등에서 끌고 간 20만명의 여성을 위안소라는 이름의 군대 ‘강간센터’에 가둬놓고 섹스노예로 부렸다. 1937년 중국 난징(南京)에서 일본군은 20만∼30만명의 민간인을 학살했고 2만명 가량의 여성을 강간했다. 이래놓고도 일본에서는 ‘난징 학살은 20세기 최대의 거짓말’이라는 주제로 버젓이 세미나가 열린다. 위안부에 대해서도 국가배상은 있을 수 없고 민간보상이나 받아가라는 태도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않는다.

▷70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바의 게토(유대인 집단거주지)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일본은 한문깨나 안다는 사람도 해석이 쉽지 않은 ‘통석의 념(痛惜の 念)’이라는 식의 애매한 표현으로 ‘사죄’를 한다. 몇해 전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도 일본을 방문해 “마음으로부터 사죄가 아니라면 차라리 그만두어야 한다”고 충고한 일이 있다. 일본이 아시아 국가들과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려면 진심에서 우러나온 과거 인정과 사죄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황호택<논설위원>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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