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진우]'어머니의 대동강'

  • 입력 2000년 7월 10일 18시 40분


내 어머니는 팔순 노인이시다. 오래된 관절염으로 걷기가 힘든데다 온 몸 구석구석이 쇠약해져 거의 온종일 누워 계셔야 한다. 당신의 고단했던 삶을 지탱해온 육신의 살은 시나브로 빠져나가 이제 어머니의 어깨와 팔다리에는 삭정이 같은 뼈만 남았다. 때때로 정신을 놓쳐 아침과 저녁을 혼동하시는 어머니. 그 어머니가 남북 이산가족 상봉소식을 들으셨는지 요 며칠 부쩍 고향 얘기를 입에 올리신다. “사립문 밖으로 나가면… 대동강물이 시퍼렇게 흘렀어.” 합죽해진 입술을 오물거리며 어머니는 그 말씀을 몇 번이고 되뇌신다.

▼그리움의 눈빛▼

오랜 세월 고향 이야기는 입에 담지 않으시던 어머니다. 부모님은 벌써 돌아가셨을 테고 죽지 않았다면 오빠와 여동생이 북녘 땅 어딘가에 살고 있겠지만 이제 와서 찾으면 무얼 하고 만나면 무얼 하겠느냐, 만난들 곧 헤어져야 하거늘 다 부질없는 짓이지. 85년 9월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서울과 평양을 찾아 혈육과 상봉할 때도 어머니는 짐짓 무심한 듯했다. 그러시던 어머니가 요즘에는 자꾸 시퍼렇게 흐르던 대동강물을 떠올리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되든 안되든 방문신청이라도 해보는 건데. 하기야 신청한 분들 7만 6000여명 가운데 고작 100명이 뽑힌다고 하니 그런 요행을 바라기도 어렵다. 더구나 운신이 거북한 어머니로서는 당장 긴 여행길에 나설 수도 없다. 자식은 그냥 그렇게 ‘어머니의 대동강’을 흘려버린다. 하나 대동강을 얘기할 때 어머니 눈에 고이는 그리움의 빛마저 흘려보낼 수는 없다. 망연한 듯 하면서도 절절한 눈빛. 그 눈빛은 임종하기 전 아버지가 보인 눈빛이기도 하다.

내 아버지는 19년 전 돌아가셨다. 80년 여름 자식이 강제해직 돼 상심이 컸던 아버지는 그 해 겨울 눈길에 넘어지면서 풍을 맞았고 한달 가량 자리보전을 하다 눈을 감으셨다. 아버지의 고향은 금강산 위쪽인 강원도 통천. 현대가 앞으로 개발한다는 ‘금강산 특구’에 속한 강원도 최북단 지역이다. 아버지는 임종을 지키던 자식에게 원산 앞 바다 얘기를 했다.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통천을 떠나 대처인 원산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그러기에 그렇듯 힘겹게 입술을 움직여 원산 앞 바다를 얘기하려 하셨던 모양이다. 그때 아버지의 눈빛은 요즘 어머니가 대동강을 얘기할 때 보이는 바로 그 눈빛이었다.

2년 전 겨울 금강산을 찾았을 때 일이다. 너럭바위를 타고 흐른 맑은 물이 옥 쟁반에 담긴 듯한 옥류동 계곡의 풍광에 취해 미적거리던 하산 길에서 산죽을 엮어 만든 비를 든 앳된 북녘 처자가 스치듯 지나치며 들릴 듯 말 듯 인사를 건넸다. “잘 보셨습네까.” 입성은 초라하지만 수수하고 부드러운 품이 여낙낙하다. 동그란 얼굴의 북녘 처자가 살짝 얼굴을 붉혔는가 싶었는데 한층 당황한 것은 오히려 남녘 사내였다. “아, 예예.”

그때 문득 아버지의 눈빛이 떠올랐다. 부끄러웠다. 아버지가 못내 그리워하던 북녘의 숨결에 ‘예예’로밖에 대하지 못하다니. 비록 ‘이북내기’인 부모의 뿌리뽑힌 삶과 실향(失鄕)의 한(恨)을 절실하게 느낄 수는 없었다 해도 아버지의 그 절절한 눈빛만은 잊지 말아야 했다. 그랬더라면 북녘 처자의 인사에 그렇듯 당혹해 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옹색한 분단의식이 마음 속 깊이 벽을 치고 있었던가.

▼고작 100명씩 오가서야▼

광복과 전쟁을 전후해 북의 고향을 떠나 남으로 내려온 월남 1세대가 분단 55년 세월동안 겪어야 했을 온갖 기구한 사연들을 어찌 필설로 다 옮길 수 있으랴. 그분들 앞에 필자 자신의 부모 얘기를 늘어놓다니 송구스럽다. 다만 내 어머니의 눈빛을 한 여러 월남 1세대 어른들께서 한 분이라도 더 북녘의 혈육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할 뿐이다. 판문점이든, 금강산이든 하루 빨리 면회소를 만들어 남북 이산가족들이 언제라도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는 이것저것 재지 말고 누구 말처럼 ‘통 크게’ 해야 한다. 한 번에 고작 100명씩 오고 가서야 어느 세월에 그 많은 그리움을 수습한단 말인가. 그 사이 많은 분들이 한을 이고 눈을 감을 것이다. 이제 정말 더 미루고 말고 할 시간이 없다.

내 어머니는 어제도 퍼렇게 흐르던 대동강물을 얘기하셨다. 절절한 그리움의 눈빛으로.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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