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Art]초상화의 대가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는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자른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많은 사람들과 어울렸던 사람이었다. 그는 탐욕스럽게 보일 정도로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편지를 썼으며, 4개 국어를 할 정도로 외국어에도 능통했다. 또 젊은 시절에는 화랑의 도제, 학교 교사, 복음주의 목사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직업을 거쳤다. 나중에 파리에서 화가생활을 할 때에도 그는 전위 예술가에 속하는 거의 모든 사람을 만났다. 그가 사람들로부터 고립되기 시작한 것은 말년에 정신병이 심해졌을 때부터였는데, 그 때에도 그는 자신의 담당의사인 폴 가세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

보스턴의 ‘파인 아츠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반 고흐:얼굴을 맞대고’라는 전시회에서도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이 전시회는 고흐가 그린 초상화들로만 구성돼 있는데, 고흐는 모두 80점에 달하는 이 작품들 속에 친구들, 이웃들, 연인들, 낯선 사람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모습들을 담아놓았다.

초상화는 고흐가 특히 매력을 느꼈던 장르였다. 그리고 이 장르에서 그를 능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사진과 같은 정확한 묘사를 싫어했다. 하지만 사람의 심리를 무한정 파고드는 것에서도 한 발짝 물러서 있었다. 타고난 성정(性情)에 의해 세상을 도덕가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그는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그림의 대상인 상대방을 인생이라는 상징적인 드라마의 배우로 취급했다.

고흐의 인생이라는 드라마는 처음에는 아주 부드럽게 시작됐다. 아버지가 네덜란드 개신교 목사였고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당근 색깔의 머리카락과 맵시 있는 입술을 가진 매력적인 젊은이였다. 16세 때 그는 고급 복제 그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헤이그의 화랑에 일자리를 얻었고 실력을 인정받아 런던 지사로 발령 받았다. 그런데 런던에서 그는 사랑에 빠졌고, 그 여인에게 거절당한 뒤 침울해졌다. 그 후 그는 성경과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에 빠져들기 시작해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것이 자신의 미래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벨기에의 퇴락한 광산촌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며 병자를 돌보고 광부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리고 그 지역 교회와의 마찰이 있은 후에는 농부의 생활을 그림의 주제로 삼았던 프랑스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를 본받아 자신의 에너지를 예술에 쏟아붓기로 했다.

보스턴 파인 아츠 미술관의 전시회는 바로 이 무렵인 1881년경부터 그 이후를 다루고 있다. 이 때 20대 후반이었던 고흐는 화가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헤이그로 돌아왔다. 그는 몇 년 동안 온갖 종류의 그림들을 보고, 학생을 위한 교본에 실린 그림들을 모사하면서 독학을 했다. 그리고 그는 직업적인 모델을 고용할 돈이 없었기 때문에 도시에서 만나는 노인들에게 모델이 되어줄 것을 부탁했다. 이 때 그린 그림들이 이번 전시회의 첫번째 방을 차지하고 있다. 이 그림들은 차분하면서도 과도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초상화라기보다는 캐리커처에 더 가까운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고흐가 사회적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한 잡지의 삽화가가 되고 싶어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후 파리에서 고갱, 툴루즈 로트렉, 쇠라, 피사로 등과 교류하면서 그림을 그리던 시절을 거쳐 그는 쇠약해진 몸으로 프랑스 남부의 아를로 이주했다. 그가 개인적으로 황금기를 누린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특히 룰랭 가의 사람들을 그린 그림은 그가 그린 최고의 작품에 속한다. 우편배달부였던 조셉, 그의 아내인 오거스틴, 그리고 두 사람의 세 아이로 구성된 룰랭 가는 고흐가 그린 17점의 초상화를 통해 이번 전시회에서 재회했다.

고흐의 그림은 그의 삶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고흐는 작품과 인생에서 모두 현대적이었다. 이번 전시회의 카탈로그는 고흐가 마티스 같은 화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최근 초상화가 유행하는 현상도 초상화라는 장르에 현대적인 형태를 부여해주었던 고흐에게 모든 것을 빚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http://www.nytimes.com/library/arts/070700vincent-vangogh.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