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0년 6월 14일 19시 33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최근 바둑계에서 무섭게 부상하고 있는 10대 기사들. 90년대 들어 입단 연령이 중고생 연령인10대로 낮아지면서 10대에 입단해야만 기사로서 대성할 수 있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그러나 10대들이 성적을 내는 이면에는 ‘학업 포기’가 뒤따른다.
최근 32연승을 거두는 등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는 이세돌(李世乭·17) 3단은 고향인 전남 신안군 비금도의 비금중학교를 중퇴한 뒤 학교와 인연을 끊었다.
형 이상훈(李相勳)3단은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바둑을 위해 더이상 학교를 다닐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학교에 미련을 두기 보다는 홀가분하게 승부에만 전념하겠다는 것.
이3단은 올해 5월까지 37판의 공식 대국을 치렀다. 공식기전이 토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열리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2, 3일마다 한판씩 둔 셈이다. 또 대국이 없는 날은 남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충암연구회 등에 나가 바둑 연구를 한다. 이세돌3단보다 어린 열다섯살 동갑내기 기사로 ‘신3인방’으로 불리는 최철한(崔哲瀚)3단 원성진(元晟溱)2단 박영훈(朴永訓)초단은 모두 학교(충암중)에 나가본지 오래다.
그나마 바둑 특기생을 인정해주는 충암중고등학교에 다니지 않으면 학교에 적을 두기도 힘든 셈.
최명훈(崔明勳·25)7단이나 목진석(睦鎭碩·20)5단처럼 아예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학업을 끝내 프로기사 생활에 치명적인 공백을 가져오는 군대문제를 해결한 사례도 있다. 중졸이하는 보충역에 편입되기 때문이다.
바둑 성적과 학업은 반비례한다는 것이 정설. 12세 때 입단한 직후 바둑 대신 학업을 선택한 최규병(崔珪昞·37) 9단은 13년의 공백끝에 바둑계에 복귀해 좋은 성적을 내고 있지만 최정상급에는 들지 못하고 있다. 바둑계에서는 최9단이 당시 바둑을 선택했으면 비슷한 연배인 유창혁(劉昌赫) 9단 못지않은 성적을 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고 있다. 예전에도 10대에 입단한 젊은 기사들이 학업을 포기한 경우는 많았지만 지금과는 ‘사고방식’이 달랐다.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한 남치형(南治亨·25·여) 초단은 “몇년전만 해도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면 검정고시라도 봐서 졸업장을 따려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경쟁이 너무 치열해 학교를 그만 두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며 “바둑만 잘둬도 성공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사회 분위기도 한 몫을 했다”고 말했다.
역설적으로 프로기사를 위한 진학의 길은 예전보다 훨씬 넓어졌다. 4년전 명지대에 바둑학과가 생긴 것을 시작으로 일부 대학에서 바둑기사를 특기생으로 뽑고 있다.
98년 고려대 신문방송학과에 특기생으로 입학한 김명완(金明完·22) 4단은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니면서도 제법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다. 지난해 성적은 46승 1무 20패. 김4단은 “바둑 못지 않게 학교를 다니면서 얻는 사회 경험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며 “졸업한 뒤 언론계나 뉴미디어 분야에서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목진석5단은 “학업을 포기하고 바둑에만 전념하겠다는 결정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