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최재천/문명, 그 공존과 충돌의 법칙

  • 입력 2000년 6월 9일 19시 03분


▼'문명의 충돌' 새뮤얼 헌팅턴 지음/김영사 펴냄▼

▼'문명의 공존' 하랄트 뮐러 지음/푸른숲 펴냄▼

요사이 우리 사회에 세계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학계와 정계는 물론이고 일반인들 간에도 세계화에 관한 토론이 활발하다. 그런데 이런 토론 중에 찬반의 논의가 심심찮게 벌어져 퍽 당황스럽다. 김영삼 정권 시절 국가 차원에서 세계화 정책이 처음 공표되었을 때부터 시작된 반대 의견이 아직도 가끔 고개를 든다.

세계화는 이제 막을 수 있는 흐름이 아니다. 대원군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는 한, 쇄국은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다. 거의 다 젖혀진 ‘철의 장막’ 뒤에 간신히 몸을 숨기던 북한도 이제 바야흐로 문호를 개방하기에 이르렀다. 세계화 정책의 세부사항을 반대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흐름 그 자체를 멈출 수는 없다.

동서냉전의 종식과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이제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문화권으로 묶여가고 있다. 이런 과정 속에 그 동안 서로 다른 문명으로 존재하던 기존의 문화권들은 과연 어떤 형태로 자리매김을 하게 될 것인가. 이 엄청난 문명의 전환기를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 하랄트 뮐러의 ‘문명의 공존’을 읽지 않고 무사히 넘기기는 그리 쉽지 않을 듯 싶다.

우리 환경도 언제부터인가 이른바 도입종 또는 외래종들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토종 물고기들이 블루길에게 서식지를 빼앗기는가 하면, 황소개구리는 뱀까지 잡아먹으며 우리가 갖고 있던 생태계의 질서의식 마저 무너뜨린다. 이같은 외세의 침입은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북미의 호수들은 온통 카스피해 원산인 얼룩무늬홍합에 의해 수로가 막혀 야단이고, 산야는 산야대로 극동에서 건너간 칡덩굴로 질식할 지경이다.

그러나 이처럼 생물이 이동하며 정착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에는 한 가지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다. 황소개구리나 칡덩굴 등은 대세가 아니라 예외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엄청나게 많은 생물들이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하지만 대부분은 실패하고 사라지는 것이 자연의 참모습이다. 그들 중 극소수가 무슨 까닭인지 모르나 고향보다도 타향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둘 따름이다.

생물이 이동하듯 문명도 늘 움직여왔다. 다만 지금 더 크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문명이 만나는 과정을 단순히 충돌과 공존이라는 두 개념으로 정리할 수 있을지 자연을 연구하는 나로서는 솔직히 의심스럽다. 지나치게 단순한 이분법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지만 어디에선가 출발해야 한다. 이 두 책은 첫걸음에 불과하다. 갈 길은 멀고도 험하다.

최재천(서울대 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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