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후지쓰배 8강전]韓-中-日 "절묘한 대진"

  • 입력 2000년 5월 31일 19시 19분


올해 세계 바둑대회에서 한국 기사들이 올린 성적표를 보자.

우선 3월 막을 내린 1회 농심 신라면배. 한중일 3국에서 각각 5명의 기사가 출전한 이 대회에서 이창호(李昌鎬)9단의 막판 분전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일단 아슬아슬했던 첫 출발은 좋은 결말로 끝났다.

그러나 이어 열린 2회 춘란배에서는 조훈현(曺薰鉉)9단을 제외한 한국 기사가 16강에서 모두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조9단도 8강전에서 중국 신예 쿵제(孔杰)5단에게 뜻밖의 패배를 당했다.

3라운드는 4회 LG배 세계기왕전. 이9단을 꺾고 결승에 올라간 유창혁(劉昌赫)9단과 중국 위빈(兪斌)9단의 결승 5번기는 객관적으로 유9단의 우세가 점쳐졌다. 그러나 결과는 유9단의 1대3 패배.

4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잉창치(應昌期)배에서도 이9단만 빼고 모두 32강전, 16강전에서 탈락했다.

결론적으로 올해 한국 기사들의 성적은 예년 세계대회를 싹쓸이하다시피 했던 전례에 비춰볼 때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셈. 특히 거세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세에 밀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하다.

2일 경북 경주시 힐튼호텔에서 열리는 제13회 후지쓰(富士通)배 세계선수권대회 8강전이 올 세계대회 농사의 흉풍을 가름하는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8강 대진표는 유창혁9단과 창하오(常昊)9단, 조훈현9단과 저우허양(周鶴洋)8단, 목진석(睦鎭碩)5단과 장쉬(張:)6단, 류샤오광(劉小光)9단과 고바야시 사토루(小林覺)9단으로 짜여졌다. 국가별로는 한국 3명, 중국 3명, 일본 2명.

이번 후지쯔배의 대진표는 참 절묘하게 짜여졌다는 평이다. 누가 이길지 예상하기가 무척 어려울 정도로 엇비슷한 실력자끼리 맞붙고 있는 것이다.

유9단과 창하오9단의 경우 서로 1, 2인자의 자리를 다투는데다 역대전적도 2승3패(유9단 기준)로 호각지세. 유9단의 경우 지난해 마샤오춘(馬曉春)9단을 반집차로 누르고 우승하는 등 후지쓰배와 인연이 깊은 편. LG배 세계기왕전의 경우 준우승만 3번하는 등 불운의 기전이지만 후지쓰배에서는 우승 2번에 준우승 1번으로 괜찮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충격의 패배를 한이후 공식기전 1승4패의 슬럼프를 겪고 있다는 점이 변수.

조9단과 저우8단은 역대 전적이나 경험으로 볼 때 조9단의 우세가 점쳐지지만 이번 대회에서 이창호9단을 꺾은 저우8단의 저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목5단과 장6단은 서로 세계대회 8강에 처음 진출한 신예. 대만 출신인 장6단은 일본내에서 신인왕 야마시타 게이고(山下敬吾)6단과 엇비슷한 실력으로 평가받고 있는 신예. 16강전에서 마샤오춘9단을 눌러 이번 대회 최대의 파란을 일으켰다.

‘싸움닭’인 목5단은 “장6단이 실리를 매우 밝히는 기풍이어서 마음껏 실력을 발휘해보겠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고바야시9단과 류9단은 서로 오랜만에 세계대회 8강에 진출한 역전의 용사들.

문용직(文容直)4단은 “8강전 네판 모두 좋은 승부가 될 것 같다”며 “한국세가 거센 중국세의 도전을 물리칠 수 있느냐가 이번 대회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