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대토론]고교등급제 도입

  • 입력 2000년 5월 25일 20시 36분


《2002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일부 대학이 고교간의 학력차를 인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대학이 독자적인 기준을 갖고 고교 내신성적을 평가한다는 것이지만 내용을 들춰보면 고교 등급화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찬성론자들은 고교간의 학력차가 엄존하는 만큼 이를 인정하는 것이 공평하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고교를 차별화하고 경쟁시킴으로써 고교평준화 제도가 불러온 전반적인 학력 저하 현상을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학생이 학교를 선택할 수 없는 실정에서 고교등급화는 교육 기회를 불공평하게 제한하는 것이며 다양한 기준으로 다양한 인재를 선발해 교육 기회를 고루 주는 현대 대학 교육의 이념에 어긋난다는 반대론도 만만치 않다.》

▼찬성 "자유경쟁으로 학업능력 빠진다"▼

어떠한 토론이든 정확한 현실 파악을 기본으로 한다. 요즈음의 고등학교 등급화에 대한 논란들이 현실에 대한 막연한 정보만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전국 고등학교의 1등 학생들만 선발하자.” 얼마 전 입학관련 회의에서 나온 아이디어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자. 재학생 가운데 단 1명도 수능시험 성적이 전국 상위 10% 이내에 들지 못하는 고등학교가 있는 반면에 재학생 전원이 드는 고등학교가 있다.

2000개에 달하는 전국의 고등학교 중에서 전자에 속하는 고등학교가 절반을 넘는다. 반면에 20여개의 상위권 고등학교에서는 재학생의 80% 이상이 전국 상위 10% 이내에 들고 있다. 정보는 공개되고 만인이 소유하여야 제 값을 발휘한다. 당국은 이런 관련 정보들을 공표하여 의미있는 논란들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다음에는 고등학교의 내신 현황을 보자. 표에는 4개의 특목고, 비평준화고와 평준화고의 내신과 수능성적이 나와 있다. 같은 특목고의 경우에도 A고등학교는 80%에 가깝게 ‘수’를 주고 있고, B고등학교에서는 47%만 ‘수’를 받고 있다. C고등학교에 비하여 수능이 현저히 떨어지는 D고등학교가 오히려 더 높은 비율의 ‘수’를 주고 있다.

이런 내신 차이와 부풀리기의 실상도 알려줘야 한다. 당국은 절대평가를 권장하더니 이제는 석차의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90점 이상인 학생들간의 석차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평어(‘수 우 미 양 가’)든 석차든 고교의 내신은 신뢰성을 완전히 잃었다.

현실이 이러니 대학 입장에서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 고교등급화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매년 150명 이상의 합격자를 내는 고등학교와 수년 동안 1명의 합격자도 내지 못한 고등학교를 같이 취급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대학들은 고교별 특성을 고려해 내부 전형자료로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물론 어떠한 개인도 선배들의 과거 입시성적에 따라 불이익을 받는 ‘현대판 연좌제’의 희생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이러한 문제점도 고려해 가장 현실적이고 공정한 고교등급제 방안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야 한다. 입시개혁의 다양한 전형제도가 학력이라는 선발 기준의 중요성을 소홀히 한 때문이다. 수능은 매년 쉬워져 3년 전보다 80여점이 높아졌다고 한다.

더 높은 수준의 공부는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고, 최근 1년 사이에도 학력 저하가 눈에 띈다. 과외는 오히려 더 심해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더욱이 헌법재판소의 ‘과외금지 위헌’ 결정 이후 학력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약화되고, 창의력이라는 선발 기준이 지지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기초지식 없이 창의력이 어떻게 생기는가.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과연 한가지만 잘한 것일까. 뉴튼이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기발한 머리로 어느날 갑자기 만유인력의 법칙을 생각해낸 것은 아니다. 그는 수학 물리학 등 기본학문에 충실한 기초를 쌓았으며, 출중한 실력을 갖추었고, 이것이 토대가 되어 대법칙을 발견한 것이다.

지금의 평준화 정책은 학력 저하를 가져오는 하향 평준화일 수밖에 없고 국력의 커다란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오히려 고등학교를 차별화해서 영재를 키우고, 자유경쟁에 의하여 자질을 힘껏 발휘하고 능력에 따라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현시키는 것이 교육입국, 즉 교육을 통한 국가 경쟁력 제고의 지름길일 것이다.

제일 중요한 선발기준은 역시 학력이다. 이를 위하여 수능은 난이도를 높여 변별력을 대폭 강화하고, 학력의 자유경쟁을 유발해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시키고, 전체의 학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그러면 고교등급화 문제는 자연히 해소될 것이다. 수년 전 고등학교간의 차이가 더 심했을 때에도 내신의 불이익에 불만이 없었다. 학력에 의해 보완할 수 있는 넓은 길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김성인(고려대 산업공학과교수)

[필자 약력]△46년 충남 예산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KAIST 산업공학과 박사 △고려대 교무처장 △대한산업공학회장

▼반대 "암기위주 학교교육 부활 불보듯"▼

최근 ‘고교 등급제’를 도입해 대학입학전형에서 고등학교간 학력차를 반영하려는 일부의 움직임은 교육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우려할 만한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학교간 학력차를 인정할 경우 다시 ‘학력 중심’의 입학 전형 체제로 회귀하고 초 중등교육이 암기 위주의 입시준비 과정으로 변질돼 교육의 비정상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2002학년도 새 대학입학전형제도의 핵심은 과거 ‘학력 중심’의 우수학생 개념에서 탈피해 다양한 능력 소질 특성을 중시하는 ‘우수학생’ 선발 방식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간 학력차를 인정하게 되면, 다시 중등교육은 학력만 높이기 위한 입시 준비 수단으로 전락하고, 입시 위주 경쟁 고등학교가 전인교육을 강조하는 고등학교보다 우대되며, 고등학교 입학전형에서 그 경쟁이 과열됨으로써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과열과외의 확산과 초 중등교육의 비정상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또한 소위 학력이 높은 명문고 진학을 위한 위장 전입, 학교간 등급 올리기 경쟁 가열 등의 문제도 더 심각해질 것이다.

이렇게 예상되는 문제들은 현재의 학교교육 정상화 및 창의적 인력 양성이라는 새 대학입학전형제도의 기본 방향과 전면적으로 배치된다.

둘째, 현재 고교 평준화 정책이 그래도 유지됨에 따라 대부분의 학생들은 고등학교 선택권이 없이 강제 배정되고 있기 때문에, 학교간 학력 차이를 인정할 경우 대부분의 학생이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불이익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즉 많은 학생의 교육 기회 불균등 현상을 야기할 수 있다.

특히 공립학교의 경우 교원이 순환 보직되기 때문에 어떤 특정 학교의 교육의 질이 매년 우수(혹은 불량)하다는 판단을 하기 어렵다는 부수적인 문제도 뒤따른다.

고교 평준화 제도의 유지 여부에 대한 결단이 있기까지는 고교 등급제와 같은 학교차 인정 체제가 도입돼서는 안된다.

셋째, 과거 진학자 수나 과거 선배들의 성적을 근거로 해서 학교간 학력차를 인정할 경우 선배들의 업적으로 후배의 진학 기회를 제약하게 되어 법적 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많다. 학교차가 학생 개인의 차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강력한 반발에 부닥칠 가능성도 높다. 선배나 다른 동료들의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특정 학생이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는 점은 학교차로 인해 개인차를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넷째, 현대사회에서 대학입학전형제도는 소수의 정예를 선발하는 ‘능력주의’ 이념보다는 능력과 교육 기회의 균등을 동시에 주장하는 ‘절충주의’ 이념과 대학교육 기회의 형평성과 평등성을 중시하는 ‘평등주의’ 이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대학교육을 규정하고 있다.

대학이 소수의 정예 엘리트를 양성하는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는 신분사회에서는 대학입시가 고도의 교육적 선발기능을 갖게 돼 ‘능력주의’를 표방하였지만, 대학이 대중화 보편화되어 이질적인 다양한 인재를 양성하고 나아가 대학교육 기회를 개방해 교양인을 양성하는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다양한 준거를 가진 선발제도와 균등한 대학교육 기회를 보장하는 선발제도를 강조하는 ‘절충주의’와 ‘평등주의’를 표방하게 된다.

대학입학전형에서 학교간 학력차를 인정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는 이러한 대학입학전형제도의 이념에 비춰 판단돼야 한다.

학교차를 인정하는 것은 ‘능력주의’ 이념에 무게를 실은 관점인 반면 인정하지 말자는 것은 학생이 어느 학교에서 공부했든 귀속 변인에 관계없이 절대평가에 의한 평가라는 동일한 준거 위에서 ‘평등’의 개념을 실현하려는 시각이다.

따라서 학교간 학력차를 인정하자는 입장은 지역간 학교간 고교교육의 균형 있는 발전을 촉진하고 균등한 대학 교육 기회를 보장하려는 현대사회의 대학입학전형제도의 이념과 배치된다.

결론적으로 현 교육 상황에서 학교간 학력차를 인정하는 것은 우리 교육을 다시 과거로 회귀시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고교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하고 고교에서의 평가 결과를 대학에서 신뢰할 수 있도록 고교 교사들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이뤄질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박도순<한국교육과정 평가원장>

[필자 약력]△42년 충북 청주 출생 △고려대 교육심리학과 졸업

△미국 피츠버그대 교육박사 △한국교육개발원 수석연구원 △고

려대 교육대학원장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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