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공종식/도감청 말로만 규제

  • 입력 2000년 5월 14일 20시 07분


"앞으로도 소를 몇마리나 더 잃어야 외양간을 고칠지…."

감사원이 12일 수사기관의 부당감청 사례를 발표한 뒤 여야가 한목소리로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서자 그동안 관련 법안의 개정과정을 지켜본 국회 법제사법위의 한 관계자가 자탄하듯 던진 말이다.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움직임의 궤적을 살펴보면 정치권은 '소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치기는커녕 소를 몇차례나 잃고 난 뒤에도 여전히 외양간을 고치지 못했다'는 비난을 들을 만하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도청 감청의 문제점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98년 9월 국회의 국정감사에서였다. 당시 이 문제가 집중 제기되자 법무부는 국회에 통신비밀보호법개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어찌된 이유에서인지 법안은 의원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됐다.

그러다가 1년이 지난 뒤 국감에서 다시 도청 감청문제가 도마에 오르자 여야는 또 일제히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에는 여야도 법개정에 상당한 의욕을 보였고, 실제로 상당한 의견접근도 보았다.

이번 감사에서 문제점으로 드러난 통신회사들의 무분별한 통신정보제공 관행을 엄격히 규제하자는 데 대해서도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총선'이 문제였다. 감청 대상범죄의 뇌물죄 포함여부 등 몇가지 쟁점에 대한 막판 협상이 필요한 시점에서 법사위원들은 물론 여야 지도부도 모두 선거현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아예 협상 자체가 진행되지 못했던 것.

이로 인해 개정법안은 2년 동안 쳇바퀴만 돌리다 15대 국회와 함께 사라질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여야는 13일 감사원 감사결과가 발표되자 "16대 국회가 개원되는 대로 법을 개정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여야의 행태와 평소 정책현안에 대한 그들의 '냄비식 대응'을 생각하면 이번 약속도 공허한 '구두선(口頭禪)'이 아닌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공종식<정치부>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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