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따라 잡기] 투신권 구조조정과 증시

  • 입력 2000년 5월 1일 16시 51분


투신권 구조조정이 증시는 물론 한국 경제의 앞날을 좌우할 최대 현안으로 등장했다. 지난 수십년간 증시가 휘청거릴 때 마다 증시 부양의 선봉대 역할을 해온 투신권이 대우 사태이후 경제 불안의 핵심으로 등장, 증시에도 상승장세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 투신권 불안이 수급 불균형의 주범

투신권은 그동안 대표적인 기관투자가로 증시의 안전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작년 하반기 대우사태이후 투신권은 증시가 상승세를 보이기만하면 매도물량을 쏟아내며 증시의 발목을 잡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투신사들이 시장에서 제기능을 못하게 된 주원인은 그동안 잠복됐던 부실이 대우사태로 드러나면서 고객들의 신뢰를 잃어 수탁고가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사태이전인 99년 7월 257조원이던 투신사의 수탁고는 지난4월27일현재 166조원으로 10개월사이 91조원이 빠져나갔다. 공사채형 수익증권은 같은기간 217조원에서 91조원으로 126조원이 줄었다. 주식형 수익증권은 작년말 55조5000억원에서 4월말 65조9000억원으로 10조여원이 늘었으나 공모주에만 주로 투자하는 하이일드펀드와 CBO펀드가 22조원가까이 되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12조원이 감소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현재도 고객들의 환매 요구는 계속되는데 신규 자금 유입은 매우 저조하다는 점이다. 지난 4월중 투신권의 수탁고는 5조원이상이 줄었다. 이같은 고객 이탈은 투신사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을 털어내고 거듭 태어나지 않는 한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자 정부는 부랴부랴 투신 살리기에 나선 것이다.

◆ 본격화되는 투신권 구조조정

양 투신사에는 지난1월 이미 한국 2조원, 대한 1조원등 총 3조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갔다. 그런데 이정도로는 부실을 해결할수 없다는 시장 참여자들의 판단에 따라 투신권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며 위기가 확산돼 왔다.

양 투신사는 올들어 고객들이 맡긴 신탁계정의 부실을 자체 재산인 고유계정으로 넘기고 판매사와 운용사의 분리 계획을 밝히는등 고객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전력을 쏟고있으나 고객들의 이탈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투신의 경우 작년말 24조4735억원에 달하던 수탁고가 4월27일현재 21조211억원으로 올들어 3조4524억원 빠졌고 대한투신도 22조8833억원에서 20조3405억원으로 2조5428억원이 줄었다.

이에 정부는 1차로 자금을 투입한 지 4개월만에 다시 5월중 한국투신과 대한투신에 5조원규모의 공적자금을 더 투입하겠다고 나섰다. 정부는 양 투신사에 추가로 공적자금을 넣는 시점에서 부실에 책임이 있는 기존 경영진에 대한 책임을 확실히 묻고 향후 신탁 운용의 투명성을 높여 부실 발생을 근원적으로 막기 위한 청사진을 담은 경영정상화계획(MOU)도 체결할 방침이다. 또 한투와 대투에서 분리되는 투신운용사를 비롯한 투신사들의 생존 기반을 마련해주기위해 하반기에 개방형 뮤추얼펀드를 허용하는등 새상품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증시에서 종합주가지수는 정부가 양 투신사에 추가로 공적자금을 넣겠다고 발표한 4월25일 10.38포인트가 빠지는등 이후 27일까지 50포인트이상 떨어졌다. 정부가 지원대상에서 한국, 대한투신만 언급하고 또 다른 문제덩어리인 현대투신을 제외하자 시장이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현대투신은 3월말현재 부실규모가 2조원정도. 또 고객의 신탁재산을 담보로 빌린 초단기자금인 연계콜이 3조2000억원규모이다. 현대투신은 연계콜 해소등을 위해 정부에 2조원대의 장기저리자금 지원을 요청해 놓고 있으나 정부는 대주주의 사재출연을 포함한 자구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 투신권 구조조정은 장기적으로 증시에 호재

정부가 비난 여론의 부담을 무릅쓰고 투신권에 공적자금을 추가 투입하기로 한 것은 투신권의 기관투자가로서의 역할을 하루빨리 회복하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투신권에서 이탈한 자금이 다시 U턴해 증시의 수급 불균형이 해소되는 것이 장세를 반전시키는 발판이기 때문이다.

투신권의 매수 여력 확충은 미국 증시의 변동성 증가등으로 올들어 시장의 버팀목 역할을 더 이상 하지 못하고 있는 외국인투자자들에게 한국 증시의 가능성을 높여줌으로써 '쌍끌이 장세'를 회복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년부터 예금자 보호 대상이 2000만원으로 축소돼 올 하반기부터 부실금융기관에서의 자금 이탈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투신권의 건전화는 금융시장 전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 투자자들의 신뢰 회복이 증시 회복의 열쇠

하지만 투신 구조조정이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우선 정부가 사용 가능한 공적자금 규모가 7조원정도인 형편에서 서울보증보험, 나라종금등 돈 쓸데가 많은데 정부가 양 투신사에 지원키로 한 5조원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느냐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오는7월 채권시가평가제가 실시되면 구조조정에도 불구, 투신권에 대한 고객들의 불신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여기에 "고객이 투자에 책임을 지는 투자신탁에 대한 공적자금 지원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공언한 지 반년도 안돼 다시 지원하겠다고 말을 바꾸는 정부의 투명하고 일관성있는 정책 추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화증권 윤형호 리서치팀장은 "결국 투신권 구조조정의 성공은 투자자들의 투신권에 대한 신뢰 회복에 달려있다"며 간접투자상품에 돈이 다시 몰리는 때가 증시에도 상승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승윤 <동아닷컴 기자> par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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