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노년의 조건]<5>여가활용<1부 끝>

입력 2008-09-12 02:44수정 2009-09-24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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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서운 병은 고독”… 즐기면서 자원봉사를

예절교육-문화재 해설 등 주위에 자원봉사 기회 많아

외국어-스포츠 댄스-컴퓨터 등 인생 2막 배우는 기쁨도

노인 35% 계모임-동창회 찾아…“여가 인프라 늘려야”

《“이 공원은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 선생의 호인 ‘구암(龜巖)’을 따서 지었어요. 저 바위는 허가바위인데, 허준 선생이 77세에 생을 마친 곳이죠. 현재 서울시 기념물 11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가 10일 서울 강서구 가양2동 구암공원에서 30여 명의 초등학생에게 열심히 설명을 해주고 있다.

강사는 이동은(77) 씨. 지난해부터 지역 문화재 강사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예절교육-문화재 해설 등 주위에 자원봉사 기회 많아

외국어-스포츠 댄스-컴퓨터 등 인생 2막 배우는 기쁨도

노인 35% 계모임-동창회 찾아…“여가 인프라 늘려야”

“노인들이 용돈이 없어서 여가를 즐기지 못한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보람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왜 공원에서 먼 산을 바라보며 허송세월을 합니까.”

노인 여가문화가 부족하고 늙으면 으레 경로당이나 공원에 모여 시간을 보내는 것을 연상하지만 자신만의 일을 찾아 ‘제2의 인생’을 즐겁고 적극적으로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즐기면서 자원봉사’ 일석이조=많은 노인은 “늙어서 가장 무서운 병은 고독”이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과 더 많이 어울려야 한다는 것.

이 씨는 매일 오전 9시경 집을 나서 서울 강서노인종합복지관으로 ‘출근’한다. 벌써 8년째 같은 생활이다. 일본어 중국어 단전호흡 스포츠댄스 왈츠 탁구 당구 컴퓨터 마술 서예 장구 등 그동안 복지관에서 배운 것을 세는 데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이 씨는 복지관에서 유명 인사가 됐다. 2003년 남자 노인들을 모아 ‘젠틀맨클럽’을 만들었다. 그동안 6기에 60여 명의 회원을 배출했다. 이 클럽은 복지관 남자 노인들 사이에 선망의 동아리가 됐다.

그는 지난해부터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마술과 문화재 해설 과정을 배운 그는 요즘 매주 2회씩 문화재 해설을 하고 비정기적으로 마술공연도 한다.

김금란(70·여·서울 서초구) 씨는 4년째 매주 4회 유치원 어린이집 학원을 찾아 구연동화를 하고 있다. 아이들 예절교육도 가르친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오히려 건강이 좋아졌습니다. 몸이 성할 때 많이 움직여야죠. 그동안 살아온 삶의 지혜를 후세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노인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영수 서울아산병원 내과 교수는 “여가활동을 충분히 즐기는 노인일수록 대사증후군 우울증 등의 병에 덜 걸린다”며 “노인들의 활발한 여가활동을 독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저조한 여가문화 참여=10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가운데는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이곳을 찾는 박정기(가명·72) 씨도 있다.

이야기 주제는 전날 있었던 ‘대통령과의 대화’였다. 한 할아버지가 “알맹이가 없어”라고 말하자 또 다른 할아버지가 “무슨 소리, 대통령이 고민한 것 같은데…”라며 맞받아쳤다. 잠시 소란스러워졌지만 할아버지들은 곧 흩어졌다.

박 씨는 “복지관에는 답답해서 가기 싫다”며 “공원에 오면 자유롭고, 어떨 때는 소주도 한두 잔 기울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상인 보건복지가족부 노인지원과장은 “요즘에는 노인도 신세대와 구세대로 나뉜다”며 “구세대 노인들은 여가문화가 없이 공원 등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고 말했다. 학력이 낮거나 소득이 적을수록 구세대 노인이 많다.

우리나라 노인의 여가문화 참여도는 저조하다. 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노인 중 자원봉사에 참여하고 있는 노인은 4.0% 수준. 미국 25%, 캐나다 32%, 호주 17%에 비하면 매우 낮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영화, 연극, 합창 등 문화활동 단체에 가입해 여가를 즐기는 노인은 1.0%에 불과하다. 등산모임, 운동모임 등에 가입한 노인은 3.9%다. 그나마 운동 횟수는 매달 1회인 경우가 절반에 가까운 42.4%를 차지한다.

▽노인 문화 활동 단순=노인들은 동창회, 계모임 등 사교적 성격이 강한 모임에서 주로 활동한다. 전체 노인의 35.5%가 사교적 여가 활동을 하고 있다.

노인의 교류가 가장 많이 이뤄지는 곳은 경로당이다. 전체 노인의 48.2%가 경로당을 이용하고 있고, 이 중 절반에 가까운 48.0%는 매일 경로당을 찾고 있다.

그러나 경로당 서비스에 만족하는 노인은 별로 없다. 교육수준이 높은 노인일수록 경로당 이용을 꺼린다.

보사연 조사에 따르면 경로당이 불만스러운 이유에 대해 노인의 27.7%가 “경로당을 이용하는 다른 노인들과 맘이 맞지 않는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경로당을 활성화하려면 문화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전국 경로당은 5만7000여 개.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30%의 경로당을 제외하면 나머지 경로당은 노인들이 하루 종일 화투를 치거나 TV를 보는 것이 문화활동의 전부다.

정경희 보사연 고령정책팀 팀장은 “노인복지관을 지방자치단체별로 최소한 1개 이상 설치하고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에 더 신경 써야 한다”며 “노인들도 스스로 여가문화에 적극 참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김미옥 기자

▼60세 이상 누구나… 대부분 프로그램 무료▼

전국에 213개 노인복지관… 동호회 만들어 요양원서 공연도

요즘 가장 알차게 여가생활을 누릴 수 있는 곳 중 하나로 노인복지관이 꼽히고 있다.

경로당이 여가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반면 각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노인복지관은 경쟁적으로 문화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는 추세다.

노인복지관의 장점은 이용 비용이 저렴하다는 것. 차비와 점심 값만 있으면 60세 이상 노인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올 7월 현재 전국의 노인복지관은 213개다. 경기지역이 41개로 가장 많고 서울에 27개가 있다. 노인복지관별로 50∼100개의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일부 프로그램은 약간의 수강료를 받지만 대부분 무료다. 다만 먼저 복지관에 회원으로 등록한 후 프로그램을 이용해야 한다.

노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대부분 비슷하다. 1989년 5월 설립돼 가장 역사가 오래된 서울 노원노인종합복지관의 경우 400∼500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모든 프로그램은 무료다. 이 복지관에서는 에어로빅, 전통리듬체조, 노래교실, 악기 연주, 댄스스포츠, 서예 프로그램이 인기가 높다.

요즘 노인들은 영어, 컴퓨터 등 ‘신세대형’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다.

노원복지관은 영어와 컴퓨터 프로그램을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눠 운영하고 있다. 컴퓨터 수업은 먼저 테스트를 거쳐 반을 배정받는다. 최근에는 컴퓨터에서 사진을 편집하는 포토샵 강의가 특히 인기다. 보통 2개월 과정으로 진행된다. 영어는 6개월 과정으로 운영된다.

복지관에서 함께 프로그램을 수강한 노인들은 동호회를 조직해 활동한다.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동호회 중심으로 이뤄진다. 동호회에 참여하지 않아도 자원봉사 활동을 할 수 있다. 특별한 경력이 없다면 독거노인이나 저소득층 반찬배달 등의 봉사가 가능하다.

이 복지관의 박지은 부장은 “회원의 60% 이상이 중산층으로 ‘복지관에 저소득층 노인만 다닌다’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며 “고령화시대에 적극적으로 삶을 즐기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국 주요 노인복지관 연락처는 dongA.com 참조.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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