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용정/30대 기업집단

  • 입력 2000년 4월 24일 19시 26분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4월 ‘30대 기업집단’을 지정한다. 이같은 기업집단 지정의 목적은 지난 한 해 동안의 기업순위 변화를 파악해 보자는 것이 아니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른바 재벌들의 시장독점과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막자는 것이 근본 취지다. 이 제도를 처음 도입한 87년에는 자산규모 4000억원 이상인 그룹을 모두 기업집단으로 지정했으나 92년부터는 자산순으로 30개 그룹에 한정하고 있다.

▷30대 기업집단에 새로 진입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재계의 별’로 떠오르게 됨을 의미한다. 올해 30대 기업집단 지정 현황을 보면 지난해 기업들의 부침이 극심했음을 보여준다. 대우그룹이 몰락하면서 독립적으로 경영중인 ㈜대우와 대우전자가 각각 7위와 24위에 올랐다. 또한 한라 해태 강원산업 신호 대상 삼양 등이 탈락하고 현대와 쌍용으로부터 분리된 현대정유 현대산업개발 에쓰오일이 신규 편입됐다. 유상증자로 자산이 크게 늘어난 신세계 영풍도 새로 30대 재벌의 반열에 올랐다.

▷언제부터인가 기업들은 30대 기업집단에 드는 것을 곤혹스러워 한다. 갖가지 규제가 따르기 때문이다. 우선 상품값을 멋대로 결정할 수 없다. 상품의 판매 또는 용역의 제공을 부당하게 조절해서도 안된다. 그것만이 아니다. 상호출자 금지, 출자총액의 제한, 계열회사에 대한 채무보증 제한 등 무려 24개 법률에 의한 각종 ‘차별대우’를 받는다. 전경련이 이 제도의 폐지 또는 축소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같은 이유에서다.

▷세계화로 활짝 열린 한국시장이다. 외국기업은 펄펄 나는데 우리 기업들만 독과점의 폐해를 막는다는 이유만으로 이런저런 규제에 묶인다면 그야말로 역차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내년부터 시행되는 출자총액제한제도는 30대 대기업 지정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올해초 이미 정재계의 합의가 있었다. 재벌개혁을 마무리짓기 위해서도 당분간은 이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 개혁과 시장 사이의 이같은 괴리를 제대로 조화시켜 나가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고 정책의 궁극적 목표가 아닐까.

김용정<논설위원>yjeong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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