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교통선진국]美LA-뉴욕 교통단속/육안으로 '과속' 적발

  • 입력 2000년 4월 17일 19시 08분


“법이 부여한 권한을 뇌물과 맞바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LA)시 경찰국 공보실 제이슨 리경장(45)의 말이다. 경찰 경력 20여년인 리경장은 60년대 초까지만해도 LA에서 ‘부패 경찰’이 사회문제로 등장하곤 했으나 당시 경찰국장인 월림엄 파커의 파격적인 개혁조치로 이젠 거의 없다고 단언했다.

리경장은 “당시 파커국장은 경찰 연봉을 3배 가량 올리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한편 뇌물을 받은 경찰관에겐 가혹한 처벌을 가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의 교통단속은 경찰관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다. LA시 교통법 840조는 ‘합법적인 단속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정부가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만큼 경찰관의 권한이 막강한 편이다. 교통단속을 하는 각종 기법들에서도 이같은 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과속단속〓 오토바이를 탄 경찰관이 스피드건을 이용해 단속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과속 단속 무인카메라는 시 외곽도로를 중심으로 설치돼 있을 뿐 시내에는 적다.

특이한 점은 스피드건이 없어도 경찰관이 육안으로 과속 차량을 적발할 수 있다는 것. 이때 경찰관은 차량의 속도를 눈으로 측정한 뒤 5마일을 뺀 속도로 스티커를 발부한다.

이를 위해 경찰관들은 눈으로 속도를 측정하는 교육을 수시로 받는다.

또 순찰차를 몰 땐 과속으로 보이는 차량을 같은 속도로 추격한 뒤 해당 속도에서 3마일을 빼 스티커를 발부한다. 정확한 속도 측정을 위해 매년 한차례씩 순찰차의 속도계를 정밀 점검하고 있다.

▽음주단속〓 불시에 실시하는 음주운전 단속 때도 경찰관은 외다리서기 등 간단한 측정을 통해 음주 정도가 약하다고 판단되면 경고만 한 뒤 그냥 보내준다.

하지만 기준치를 넘는 음주운전자는 가혹하게 처벌한다.

요즘 뉴욕시는 ‘DWI(중독된 상태에서의 운전)추방운동’을 강도 높게 펼치고 있다.

뉴욕시는 지난해부터 혈중알콜농도 0.08%를 넘은 음주운전자에 대해선 단 1회 적발되더라도 무조건 차량을 압수한다.

압류된 차량은 법원의 판결을 받을 때까지 돌려받을 수 없다. 시행 석달만에 중독운전 관련사고가 38.5% 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 덕분에 뉴욕시장은 최고 영예인 국민교통안전상을 받기도 했다.

▽가중처벌〓 미국의 대부분 주에서는 과속 난폭운전 등 교통법규를 위반하다 적발되면 적발 횟수에 따라 보험료가 할증되고 벌금도 크게 오른다.

뉴욕시는 올들어 상습적으로 과속 음주 난폭운전 등을 일삼다 적발되는 운전자에 대해서는 아예 차를 빼앗아 버리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경찰관이 운전기록이 아주 나쁜 운전자를 일부러 쫓아다니며 교통법규 위반 장면을 적발해 차를 빼앗는 방법으로 2월 중순 현재까지 7대의 차량이 압류됐다.

<로스앤젤레스·뉴욕〓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전문가 기고▼

교통단속은 안전과 소통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1000만건 이상, 차량 1대당 1회 가량의 강도 높은 단속이 이뤄지고 있지만 사고율이 무척 높은 편이다.

한 예로 우리나라의 지난해 자동차 1만대당 사망자는 8.3명으로 일본의 6배, 미국의 4배 이상 높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 꼴찌를 기록했다.

단속은 교통법규을 지키도록 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법을 위반해도 대충 넘어가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우리 운전자들에게 팽배해 있다.

교통선진국인 미국에서는 교통법규 위반자에 대해 무거운 벌금과 보험료 할증, 교육 등으로 경제적 시간적 부담을 지운다. 법을 지켜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이처럼 강력한 벌칙에도 불평하는 이가 없다.

교통법규 준수에는 시민의 이해와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 세계 각국은 안전에 관한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이는 당연히 시민들의 절대적인 협조 아래에서 이뤄지고 있다.

교통법규는 사회구성원 간의 약속이고 이를 위반할 때는 제재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서도 제대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얼마 전 경찰청은 경미한 교통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계도 위주로 단속하되 음주나 과속 등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행위에 대해선 강력히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공정한 단속이 이뤄진다면 비록 단속 건수는 줄어들더라도 사고를 예방하고 단속에 대한 국민들의 그룻된 인식을 바로잡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단속에 걸리면 ‘재수없게 나만…’ 식으로 일단 부인과 변명을 하고 심지어 단속 경찰관을 폭행하는 등의 행위는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단속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도로에서 시비를 가릴 게 아니라 정해진 절차에 따라 법원에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성숙된 시민의식을 키워야 할 것이다. 전순홍(경감·국무조정실 안전관리대책기획단)

▽자문위원단(가나다순)〓내남정(대한손해보험협회 이사) 설재훈(교통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유광희(경찰청 교통심의관) 이순철(충북대 교수) 임평남(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교통사고종합분석센터 소장) 지광식(건설교통부 수송심의관)

▽특별취재팀〓이진녕(지방자치부 차장·팀장) 송상근(사회부) 구자룡(국제부) 서정보(지방자치부) 이호갑(생활부) 전승훈(문화부) 이헌진(사회부 기자)

▽대한손해보험협회 회원사(자동차보험 취급 보험사)〓동양화재 신동아화재 대한화재 국제화재 쌍용화재 제일화재 해동화재 삼성화재 현대해상 LG화재 동부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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