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강동희 풀어주니 기아가 살아나네"

  • 입력 2000년 3월 14일 19시 10분


기아 강동희선수
기아 강동희선수
50년 미국프로농구(NBA) 사상 어시스트를 가장 많이 한 ‘특급 도우미’는 LA의 ‘전설’ 매직 존슨.

존슨은 96년까지 13시즌동안 5번이나 어시스트 1위에 오르는 등 평균 11.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 역대 최고의 도움왕에 올랐다.

그는 은퇴를 번복하고 95∼96시즌에 복귀하기 직전인 95년 4월 친선 경기차 한국을 방문,실업팀 기아자동차 및 연세대와 경기를 가진 적이 있다.

당시 2m5의 존슨의 눈에 쏙 들어온 선수는 1m80의 ‘꼬마’ 강동희(사진). 상대 수비를 거침없이 제치고 골밑으로 들어가 송곳같은 패스를 연결해 주는 강동희의 활약에 존슨은 주저없이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넘버원’을 외쳤다.

강동희는 프로농구 원년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MVP)를 휩쓴 것을 비롯해 4시즌 연속 ‘베스트 5’에 뽑힌 국내 프로농구 최고의 스타.

그는 올시즌 정규리그에서 경기당 평균 7.68개의 어시스트를 올리며 이상민(현대 걸리버스)에게 빼앗겼던 어시스트 부문 1위를 한 시즌만에 되찾았다. 그것도 올 시즌 성적이 그가 세 번 어시스트왕에 오른 가운데 가장 좋다.

그런 그가 9일 삼성 썬더스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단 한 개의 어시스트(10득점)도 기록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농구공을 잡은 이후 경기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하지 못한 것은 그날이 처음.

그러자 ‘35세의 나이는 속일 수 없다’, ‘체력이 바닥난 강동희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이 무성하게 퍼졌다.

과연 그럴까. 강동희는 2차전에서 7어시스트(16득점)로 살아나더니 벼랑 끝에 몰린 3차전에선 5개의 결정적인 어시스트와 3연속 3점슛을 성공시키는 등 18점을 올리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그가 나흘만에 극적으로 ‘부활’한 이유는 뭘까.

사실 그에게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그를 둘러싼 다른 환경들이 달라진 것뿐.

올시즌 기아 사령탑에 취임한 ‘악바리’ 박수교감독의 지론은 끊임없이 부지런하게 코트를 누비는 것. 특히 경기를 조율하는 포인트가드가 쉴새없이 움직여 줘야만 팀이 살아남는 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노장’ 강동희의 노하우는 결정적인 어시스트를 찔러 주고 나머지 시간은 서서 떨어지는 체력을 보충하는 것. 하지만 그동안 이것이 박수교감독 앞에선 통하지 않았다.

감독의 뜻대로 허리부상이후 복대를 차고서도 이리저리 스윙맨이상으로 뛰어다녀야만 했던 것.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다 보니 ‘코트의 마술사’라는 별명과 달리 상대편 가슴에 볼을 안겨 주는 황당한 실책이 빈번했다.

박감독이 체력을 비축하며 경기를 운영하는 강동희 특유의 스타일을 인정한 때가 바로 13일 플레이오프 3차전. 강동희가 하고 싶은대로 놔두자 오히려 팀에 활기가 생겼다.

박감독은 왜 갑자기 지론을 포기했을까. 최근 박감독은 현대 출신 지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들로부터 “35세의 노장에게 새로운 스타일의 플레이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충고를 들었다. 박감독이 이를 받아들였고 결과는 대성공. 이제 기아의 4년연속 챔피언결정전 진출 여부는 자율성을 보장받은 강동희의 활약에 전적으로 달렸음은 물론이다.

<전창기자>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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