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수도권 마구잡이 개발 교육환경 열악

  • 입력 2000년 3월 5일 21시 16분


더부살이 수업, 위험한 등교길, 콩나물 교실….

수도권 개발지역 어린이들이 멍들고 있다. 우선 아파트를 짓고 보자는 당국의 마구잡이 개발정책 때문이다. 경기 용인시 등 수도권 개발지역의 경우 교육기반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잇따라 아파트 단지가 형성돼 교육환경이 전국 최악의 수준이다. 마구잡이 개발이 교통난 환경훼손에 이어 심각한 교육문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설 부족▼

2일 개교 예정이던 용인시 수지읍 상현초등학교의 경우 책걸상 준비가 늦어져 개교가 7일로 늦춰졌다. 역시 이번 학기 개교 예정이던 수지읍 정평중학교는 교육청의 예산배정이 늦어져 이제 겨우 골조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결국 이 학교에 배정받은 학생들은 인근 풍덕고 교실에서 ‘더부살이’수업을 받고 있다.

기존 학교의 교육여건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수지고교 1학년 한 학급 인원은 2년전 30여명이었으나 지금은 50명이 넘는다.

수지1, 2지구의 경우 최근 수년간 5만5000가구의 아파트건설사업 승인이 이뤄졌고 이 중 이미 3만여가구가 입주한 상태. 그러나 현재 수업을 할 수 있는 초등학교는 2개뿐이어서 입주민 자녀들은 풍덕천리 등 다른 지역 초등학교로 분산 배치되고 있다.

수원시 권선구 오목초등학교는 운동장 주변에 쓰레기가 매립돼 있는 상태에서 문을 열려다 학부모들의 반발로 개교를 하지 못했고 학생들은 6개월째 인근 고색초등학교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수도권 북부 개발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 의정부시 호원동 호원고등학교는 학교 안에 있는 고압송전철탑 이전이 늦어져 2일로 예정된 개교 일자를 늦췄다.

2003년 준공 예정인 파주시 금촌1지구에는 1965가구가 들어설 예정이지만 학교는 초등학교 1개교만 계획돼 있다. 김포시 풍무동 풍무지구엔 현재 3000여가구가 입주해 있고 앞으로 6000여가구가 추가로 입주할 예정이지만 초등학교 1개만 있을 뿐 중고등학교는 없다.

▼위험한 등교길▼

용인시 수지초등학교 3학년 김모군(9)은 앞으로 학교 갈 일이 막막하다. 수지택지지구에 사는 김군은 도교육청으로부터 7일 개교하는 인근 상현초등학교로 전학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런데 아파트 신축공사장 한복판에 들어선 이 학교에 가려면 덤프트럭들이 뿌연 먼지를 내뿜으며 질주하는 2차로 도로를 건너야 한다. 도로에는 인도조차 없다. 집에서 학교까지 2㎞가 넘지만 버스 노선도 없어 위험한 도로 몇 개를 건너다녀야만 한다.

분당신도시(성남시) 남쪽 죽전지구 옆 풍덕천리의 풍덕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요즘 돈을 주고 승합차를 빌려 자녀들을 등교시키고 있다. 학교 주변으로 아파트 공사현장을 오가는 대형 트럭들이 질주해 아이들이 걸어다닐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타의에 의한 전학▼

아파트단지가 먼저 들어선 뒤 뒤늦게 학교가 생기다보니 학생들은 교육청의 지시에 따라 몇 번씩 전학을 해야 하는 ‘철새 신세’가 되기도 한다.

98, 99년에 입주한 용인 수지2지구 내 S, D아파트 등에 살던 학생 중 600여명이 이번 학기에 상현초등학교로 전학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S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은 2년 후 개교 예정인 보정초등학교로 또 전학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형편이다. 상현초등학교 학부모 이모씨(38)는 “교육기반 시설을 충분히 마련하지 않은 채 건설업자들의 요구대로 아파트 건설을 허가해준 행정당국 때문에 몇 번씩 학교를 옮겨다니다 보면 아이들이 정서불안에 시달릴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용인·의정부·김포〓서정보·박희제·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경기도 교육청 입장▼

경기도교육청은 수도권 개발지역의 교육기반 시설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대폭적인 예산지원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도 교육예산의 80% 이상을 중앙정부의 교부금으로 충당하고 있는데 개발지역의 학교 신설 비용이 절대 부족하다”며 “뒤늦게 예산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이미 수천∼수만가구가 입주한 뒤에나 개교할 수 있기 때문에 과도기에는 학생들의 불편이 불가피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용인시 수지지구의 경우 올 9월까지 3개, 2001년 6개, 2002년 4개, 2003∼2006년 9개교 등 모두 22개 초등학교가 개교할 예정. 따라서 그 때까지는 학생들의 고생을 덜어줄 묘안이 없는 상태다.

자치단체가 계획적으로 추진하는 택지개발지구가 아니라 준농림지 등에 민간 업자들이 짓는 아파트의 경우 ‘학교 부지 의무 확보 기준’(초등학교의 경우 2500가구당 1개교)을 피하기 위해 업자들이 가구 수를 확보기준보다 조금 적게 책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단지가 여럿 형성된 곳의 학교 부족 현상이 특히 심각하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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