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앞뒤 바뀐 탈주대책

  • 입력 2000년 2월 27일 19시 21분


강력사범 3명의 광주지법 탈주사건에 관한 법무부의 대처가 한심하다. 앞뒤를 못 가리는 것 같다. 보도에 따르면 탈주범들은 감방 쇠창살을 뜯어 만든 흉기로 교도관을 찌른 뒤 달아났다. 그들은 탈주 당일 재판을 받으러 교도소를 떠날 때 몸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흉기를 갖고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교도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법무부로서는 우선 탈주경위를 면밀히 조사하는 게 순서이고, 아울러 탈주사건 발생과 탈주범들의 서울 출현, 그리고 경찰의 검문강화가 국민에게 불안감을 안겨준 데 대해 먼저 사과했어야 옳다.

요컨대 이번 사건관련 대책은 법무당국과 교도소당국이 기본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데서 발생한 점을 인정하고 그 경위를 철저히 조사한 뒤 마련하는 게 온당하다. 그런데 법무부의 첫 조치는 어처구니없게도 ‘대책 발표’였다. 탈주경위를 제대로 조사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올바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가. 사실 법무부가 내놓은 ‘대책’에는 문제가 있다. 법무부는 탈주사건 발생 하루만인 25일 “강도 강간 등 강력사범의 경우 포승을 묶고 수갑을 채운 채 재판을 받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우리가 보기에 이는 ‘그동안 포승과 수갑을 이용하지 않은 탓에 탈주사건이 일어났다’는 변명과 책임회피에 불과하다.

법무부의 대책은 다분히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다. 물론 강력범인 탈주범들이 재판을 받으러 나왔다가 흉기를 휘두르고 도주한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강력한 대응책이 마련되는 게 마땅하다. 정서적으로는 강력범들에게 재판정에서라도 포승과 수갑을 채우는 것 이상의 응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강력사범에 대한 그런 일반인의 심리를 이해하면서도 교정정책이 하나의 사건에 따라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릴 수는 없다고 본다.

재판을 받을 때 포승과 수갑을 풀어주는 것은 누구나 유죄로 확정되기 전에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헌법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재판을 받을 때는 사복을 입도록 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강력사범 몇 명이 탈주했다고 해서 모든 강력사범의 인권과 재판절차에 관한 원칙을 과거로 되돌리려는 처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탈주를 강력사범만 시도하리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지난날 실제로 ‘대도(大盜)’ 조세형의 경우 상습절도범에 불과했음에도 법원구치감에서 재판을 기다리던 중 탈주했다. 보다 신중한 검토를 거쳐 근본적인 탈주예방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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