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연말정산 서류제출 복잡…발품팔다 한숨만

  • 입력 2000년 1월 6일 19시 39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회사원 유모씨(35)는 최근 의료비의 연말정산 공제혜택을 받기 위해 병원 등을 돌아다니다 분통을 터뜨렸다.

의료비 공제를 받으려면 병원이나 약국에서 확인서명을 해준 영수증이 필요하다.

▼병원-약국 귀찮은듯 취급▼

유씨는 근무시간에 잠시 짬을 내 집 근처의 병원 몇군데를 찾아갔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확인영수증을 발급해주는 것을 귀찮게 여기거나 환자가 많아 바쁘다면서 진료시간이 끝난 다음에 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유씨는 “또 언제 시간을 내서 오느냐”며 항의해 결국 영수증을 받아내긴 했지만 하루 종일 기분이 언짢았다.

이달말까지 제출해야 하는 연말정산이 최근 기업별로 한창 진행되고 있지만 절차나 제출서류가 너무 복잡해 이를 시정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공제혜택 포기도 속출▼

특히 의료비 공제처럼 병원을 일일이 찾아 다녀야 하거나 주택자금 이자세액 공제 등 제출서류가 복잡한 경우 아예 공제 혜택을 포기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유씨의 경우 영수증을 미리 챙겨두지 않은 것이 잘못이지만 보통 진료비 액수가 많지 않으면 영수증 발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과 직장의료보험조합 등 의료보험 관리기관에서 피보험자가 1년 동안 지출한 의료비 총액을 연말정산용으로 보내주거나 확인해주면 이런 불편은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민간기업에서 운영하는 자동차보험 개인연금 신용카드 등의 경우 연말정산 때가 되면 1년간 총 보험 연금 납입액이나 신용카드사용액을 우편으로 보내주는 것처럼 의료보험도 같은 서비스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

공단 관계자는 “보험료가 지급되지 않는 비급여 부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있지만 현재의 전산처리 시스템으로 보험처리된 피보험자의 1년간 의료비 총액을 확인할 수 있다”며 “앞으로 대국민 서비스를 개선하는 차원에서 적극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일부 공제 대상의 경우 제출 서류가 너무 복잡한 것도 문제다.

▼5,6종 떼야 세액 감면도▼

송모씨(42)는 주택자금 이자세액을 공제받으려다 포기했다.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주민등록등본을 비롯해 건물등기부등본, 무주택증명서, 주택마련자금 납입증명서, 매매계약서 주택마련 저축 통장사본 등 5, 6종이나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동료가 납입증명서만 내고 공제 혜택을 받게 됐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회사 경리 실무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혜택을 받은 동료가 무주택자였던 점이 확실하고 국세청에서 모든 증빙서류를 일일이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공제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확인이 어렵다면 제출서류를 아예 1,2개로 줄이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세무사회 관계자는 “연말정산 증빙서류를 국세청에서 확인하기 힘든 만큼 가능한 한 주요서류만 제출하도록 불필요한 절차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궁극적으로는 기본 공제를 늘리고 신용카드 사용에 따른 공제비율을 높여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쉽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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