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새천년]사이보그시대/'불로불사'꿈 현실로

  • 입력 1999년 12월 31일 21시 19분


《새 밀레니엄이 이미 시작됐건만 그 모습은 여전히 우리의 시야에 잡히지 않는다. ‘새 시대’는 우리의 꿈인 동시에 막연한 불안의 원천이기도 하다. 과학과 인간, 세계질서와 한반도, 그리고 개인과 공동체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 것인가. 혹은 그런 것들이 살아남기나 할까.

이 모든 의문에는 정답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세기와 밀레니엄이 바뀌는 현 시점에서 우리가 가진 지식과 예지를 모두 동원해 문제의 윤곽을 그려보고 전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그 속에 미력하나마 해답의 일단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21세기 한국인’이 가질 법한 의문들에 대해 ‘21세기 독법(讀法)’을 제시하는 시리즈를 13회 연재한다.》

21세기는 사이보그의 시대, 다시 말해 인간의 몸을 포기하고 로봇으로 진화하는 시대다. 궁극적으로 불멸의 인간으로 환생하는것을 지향한다.

인공지능의 창시자인 미국 MIT의 마빈 민스키 교수의 말을 빌리면 사이보그는 인간 진화의 다음 단계다.

과거 인간의 진화가 찰스 다윈이 말했던 자연선택에 의해 이뤄졌다면 이 사이보그로의 진화는 인간의 선택에 의한 비자연적 진화인 셈이다.

세계적인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 역시 ‘마음의 아이들’이란 저서에서 “머지 않아 인간의 몸은 로봇으로 변할 것이며 심지어 뇌도 인공지능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언했다.

사이보그에 남겨진 인간의 흔적은 결국 의식뿐이다. 미래의 인간은 과연 이렇게 로봇의 몸을 빌려 의식만이 진화하는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존재로 거듭나게 될 것인가.

▼바이오닉 장기▼

인간이 사이보그로 진화해 가는 첫번째 징후는 이미 다양하게 개발된 바이오닉(bionic) 장기(臟器)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이오닉 장기란 잃어버린 손과 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눈과 심장을 대체할 전자공학적 장기다. 그런 장기를 가진 대표적인 사이보그는 사고로 식물인간이 됐다가 환생했다는 ‘로보캅’.

로보캅은 이제 공상과학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98년 스코틀랜드의 캠벨 에어드라는 사람은 16년 전 암으로 잃은 오른팔을 바이오닉 팔로 바꾼 뒤 ‘무늬’만 팔인 의수(義手)를 던져버렸다. 에든버러대병원 정형외과에서 전자장치를 이용해 팔과 손가락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바이오닉 팔을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바이오닉 장기는 이미 세계적으로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근육마비자를 위한 바이오닉 근육(뉴멕시코대 인공근육연구소), 망막이 손상된 사람에게 이식될 바이오닉 눈(존스홉킨스대), 소리를 전자신호로 바꿔 뇌에 전달하는 바이오닉 귀(버지니아대), 냄새를 맡는 바이오닉 코(오크리지국립연구소), 그리고 화학적 메커니즘으로 맛을 감별하는 바이오닉 혀(텍사스대) 등. 심지어 바이오닉 신경과 심장에 도전하는 곳도 있다. 인간의 운동과 감각기능, 내장기관 등 무엇이든 모사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인간형 로봇▼

이와 다른 또 하나의 길은 인간형(휴머노이드·humanoid) 로봇. 바이오닉 장기를 모두 모으고, 여기에 인공지능을 더하면 바로 인간형 로봇이 탄생하는 것. 84년 제작된 영화 ‘터미네이터’가 대표적인 예다.

그 수준에는 훨씬 못미치지만 지난해 7월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선보인 ‘센토’도 초보적인 인간형 로봇이다. 센토는 사람과 악수를 할 만큼 섬세한 손을 가졌다. 이보다 한단계 앞선 인간형 로봇은 96년 일본 혼다자동차가 개발한 P2로 인간처럼 두발로 성큼성큼 계단을 오른다. 최근 P2와 동생격인 P3는 축구공을 차며 2002년 월드컵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편 MIT 인공지능연구소가 개발한 ‘코그(Cog)’는 인간을 학습하느라 한창이다. 올해 여덟살이 된 코그는 카메라를 통해 들어온 시각정보로 주변 상황을 판단하고 드럼을 치며 초보적인 감정까지 표현한다. 최근엔 코그에 흥분 슬픔 성남 놀람 등의 다양한 표정을 연출하는 키스멧(Kismet)이라는 얼굴을 성형해 보탰다. 이 분야의 선두주자인 도쿄대는 40여가지의 표정을 가진 얼굴로봇까지 선보였다.

인간형 로봇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를 관장하는 인공지능. 84년부터 개발되기 시작한 인공지능 컴퓨터 ‘사이크(Cyc)’는 일상생활에서 추출한 200만가지의 정보와 50만건의 규칙을 이용해 인간의 판단능력을 배우고 있다. 코그가 마치 어린아이처럼 무(無)에서 유(有)를 배운다면 사이크는 유(有)에서 인간을 학습하는 셈이다.

한국과학기술원 김문상박사는 “21세기는 인간과 인간형 로봇의 공존시대가 될 것”이라면서 “로봇기술은 사이보그를 거쳐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발전할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의식이 이식되는 날, 인간은 로봇의 몸을 빌려 영생하게 된다는 얘기다.

▼입는 컴퓨터▼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입는 컴퓨터(wearable computer)’도 사이보그에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입는 컴퓨터란 말 그대로 몸에 착용하는 컴퓨터로, 사이보그로 진화하기 이전에 시도되는 인간기능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연구기관은 MIT의 미디어랩, IBM의 새너제이 알마덴연구소, 제록스의 팔로알토연구소 등이다.

예를 들어 안경컴퓨터는 컴퓨터 모니터처럼 3차원 이미지를 보여주고 손목시계컴퓨터는 자료입력 통신 E메일 컬러디스플레이어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96년 알마덴 연구소는 PAN(개인영역네트워크, 일명 디지털 오로라 장치)이란 특이한 장치를 선보였다. 이 장치는 사람 몸에 흐르는 전류를 이용해 악수나 키스를 하면 이를 통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첨단 통신장비다. 이 PAN과 같이 입는 컴퓨터가 언젠가 몸 안에 장착될 것이다.

▼풀어야할 과제▼

이같은 바이오닉 장기, 인간형 로봇, 입는 컴퓨터 등의 개발은 인간이 사이보그로 진화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인간이 사이보그로 진화할까.

의문은 인간이 사이보그가 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사이보그의 역사는 이미 시작됐다. 바이오닉 보청기, 바이오닉 팔다리가 대표적인 예다.

장애를 안고 살아온 수많은 사람에게 사이보그는 희망일 수 있다. 이런 희망은 새로운 사이보그 시장을 만들고 과학자들을 한껏 유혹한다.

과학자들은 사이보그로의 진화에 대해 그 가능성이 50%라고 말한다. 그 50%는 브레이크 없는 과학기술로 가능하다는 얘기이고 나머지 50%는 선택이라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진화의 문제는 장기의 일부를 바이오닉 장기로 대체한 사이보그와 그 사이보그에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정상인 사이의 논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이 양자의 공존을 가능케 하는 철학은 과연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공존의 가치관을 형성해가는 길목에 사이보그를 통해 보다 강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은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까.

또 한가지. 사이보그시대에 대해선 다른 시각도 있다. 수백만년 동안 인간은 의식만 진화하고 ‘의식의 둥지’격인 몸은 새 환경에 적응할 만큼 진화하지 못했다. 어느날 ‘우주의 오아시스’인 지구가 생태계 파괴 또는 핵 때문에 이웃 화성처럼 죽음의 별이 된다면 인간은 사이보그가 되어 행성탈출을 시도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인간은 불멸의 꿈에 앞서 생존의 현실을 좇아 사이보그로 진화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사이보그는 인간에게 ‘노아의 방주’일 수도 있다.

〈홍대길 과학동아기자〉heart@donga.com

▼키워드/사이보그▼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생체조직(ORGanism)의 합성어. 뇌를 제외한 인간의 조직을 기계나 전자장치로 바꾼 개조인간을 말한다. 요즘은 바이오닉맨(bionic man)이란 용어를 더 애용한다.

사이보그의 개념이 탄생한 것은 60년대.

머나먼 별로 우주여행을 꿈꿨던 맨프레드 클라인스와 네이든 클라인은 우주와 같은 위험한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인간이 기계와 결합하지 않고서는 힘들다고 보고, 우주선 승무원들이 사이보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뒤 ‘미래형 인간’ 사이보그는 공상과학의 주요테마로 자리잡았다.대표적인 사이보그로는 600만불의 사나이(73년) 소머즈(76년) 로보캅(87년) 등이 있다.

최근 전자공학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사이보그는 공상과학에서 벗어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생물학(biology)과 전자학(electronics)을 결합한 바이오닉스(bionics)가 새로운 바이오닉 장기들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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