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영웅 세기말 감회]'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 입력 1999년 12월 31일 09시 31분


70년 12월14일 제6회 아시아경기대회 수영경기가 벌어진 태국방콕국립수영장.

자유형 남자 400m 결승이 끝나는 순간 경기장은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듯했다.

한국의 한 고교생이 당시 아시아수영의 맹주임을 자처하던 일본선수를 모두 제치고 당당히 금메달을 거머쥐었기 때문.

당시 양정고 2학년이던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48)은 아시아신기록으로 우승해 아시아 수영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조오련의 엉성한 영법을 빗대 ‘비빔밥 수영법’이라고 비아냥대던 일본의 지도자들은 할말을 잃었다.

그는 이 대회 자유형 1500m에서도 이이다와 무라다 등 당대 일본의 스타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해 2관왕이 됐다. 그는 4년 뒤인 제7회 테헤란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자유형 400m와 1500m를 모두 우승해두 종목모두아시아경기 2연패를 달성했다.

조오련은 이렇게 ‘깜짝쇼’를 통해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촌놈’조오련은 해남고 1학년이던 68년 11월 3일 무작정 상경길에 오른다.

“중1때 제주도에 갔다가 수영대회를 처음으로 봤어요. 수영만 잘해도 장학금 받고 학교에 다닐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평소 생각했던 걸 그때서야 행동으로 옮긴 것이죠.”

그는 서울 종로통의 한 간판가게에서 잡일을 하며 YMCA에서 운영하던 수영장에서 홀로 연습을 하며 꿈을 키웠다.

우여곡절끝에 양정고에 입학한 조오련은 체계적 훈련을 받은 지 1년5개월 만에 ‘아시아의 물개’로 이름을 떨치게 됐다.

78년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그가 세운 한국신기록만 50개. 조오련의 꿈은 풀장에 머물지 않았다.

80년 8월 대한해협을 횡단해 대한남아의 기상을 드높였다. “72년 일본의 나카지마 쇼지라는 선수가 대한해협 횡단을 도전했다가 실패했어요. 그때 생각했지요, 풀장에서는 내가 세계적이지 못했지만 대한남아의 기상도 살리고 바다횡단에선 세계적이 될 수 있겠다고요.”

이어 82년 도버해협 횡단을 성공한 조오련은 한동안 물을 떠났었다.

그는 디자이너인 아내 김정복씨(47)와 함께 봉제공장을 운영하던 중 트럭이 덮치는 교통사고를 당해 공장문을 닫아야 하는 등 어려운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다시 ‘고향’인 물로 돌아온 것은 89년. 서울 압구정동에 조오련수영교실을 차리고 후진양성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그는 현재 안양과 부천에도 ‘조오련스포츠’라는 수영장을 운영하고 있다.

차남 성모(아주중)가 자유형 중장거리에서 기량이 급성장하고 있는 것이 그에게는 무엇보다 큰 자랑거리다.

▼그땐 이런 일도/돈없어 수영장 회원증 위조▼

▽‘콜레라 창궐’덕분에〓실내수영장이 별로 없었던 당시에는 여름에만 연습을 할 수 있었는데 그것도 일반인이 사용하지 않는 새벽과 한밤중에만 연습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70년에 콜레라가 창궐해 수영장출입이 전면 금지되는 덕분에(?) 마음놓고 연습을 했는데 이 때문에 신기록과 우승을 모두 차지할 수 있었다.

▽가장 황당했던 일〓82년 어렵게 마련한 도버해협 횡단이 영국현지교민가이드가 경비를 몽땅가지고 도망가 무산될 뻔 했다. 결국 예정일보다 보름뒤 2번 횡단할 예정이던 것을 한번만으로 끝냈다.

▽가장 창피한 일〓해남에서 무작정 상경해 YMCA수영장에 다닐 때였다. 수영장 수강날짜가 지나 나무젓가락에 도장을 파서 회원증을 위조했다가 걸렸다. 싹싹 빌어 수영장 청소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남을 속였다는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

▼후배들에게/기교도 좋지만 연습이 최고▼

내가 세계적 선수로 성장하지 못한 이유는 운동을 너무 늦게 시작했기 때문이다. 세계적 선수들은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는데 내가 운동을 시작한 때는 만 18세였다.

나름대로 피나는 노력을 했지만 연습량이 너무나 적었다. 운동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아시아신기록을 세웠지만 ‘큰 집을 짓기에는 벽돌(운동량)이 너무나 적었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현역 때 1년에 4만㎞를 연습하면 된다고 했지만 지금은 이의 몇배를 연습해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당장의 기록 단축에 너무 신경쓰지 말고 꾸준히 연습량을 늘려 생명력이 긴 선수가 돼야 한다. 기술적 향상도 좋지만 부단한 노력없이는 그 어떤 것도 바랄 수 없다.

〈전 창기자〉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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