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동성/세대간의 벽 '대화'로 허물자

  • 입력 1999년 11월 24일 18시 37분


5년전부터 뜻을 같이 하는 몇분들과 ‘젊은 마음을 가진 경영자들의 모임’이라는 다소 긴 이름이 붙은 모임을 만들어 월례회를 한다. 대개 4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분들로 새뮤얼 올만이 쓴 ‘청춘’이란 시를 좋아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우리가 늙는 것이 아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회원들은 이 시 귀절처럼 흘러간 옛이야기는 피하고 미래에 대해서만 얘기를 나누기로 하였다.

최근 이 모임에서 젊은 사람을 한명씩 청해 얘기를 듣는 방식으로 틀을 바꾸었다. 그리고 주제선정, 발표자 섭외, 모임의 진행을 모두 김현진양에게 일임했다. 김양은 고등학교 1학년 당시 학교를 자퇴한 만18세 소녀로 자신의 이야기를 쓴 ‘네 멋대로 해라’가 베스트셀러가 된 후 컬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김양은 지난 모임에 발표자로 고려대학교 3학년인 김택경 군을 초청했다. 김군은 약간 긴장한 어조로 자신이 ‘고연전을 처단한다’라는 글을 ‘잡(雜)’이라는 교내잡지에 써 파문을 일으킨 배경을 설명했다.

“고려대와 연세대의 정기 대항전인 고연전(또는 연고전)이 있는 날이면 으례 학생들이 줄지어 학교 인근 술집으로 들어가 ‘술내놔라’고 소릴 지른다. 이 때 술을 안 내놓으면 학생들이 온갖 저주를 퍼붓는다. 나는 학생들이 단체의 힘을 빌어 무례한 행동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 그럴 바에야 고연전을 없애는 편이 낫겠다는 주장을 교내 잡지에 발표했다. 그러나 그 글을 본 동창 선배 동료들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아 한때 자퇴를 심각하게 고려했다.”

나는 김군 주장에도 일리가 있고, 그동안 전통을 이어오면서 고대인들의 결속을 다짐하는 고연전 행사에도 나름대로 순기능이 있다고 느꼈다. 이윽고 질문이 시작됐다. 첫 분은 “젊은이들이 ‘처단’과 같은 거친 용어를 쓴다는 생각을 하니 착잡해진다”라며 얼굴에 불쾌감을 가득 띄운채 방에서 나가버렸다. 다음 분은 “김군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용어로 생각을 발표해야 우리의 호응을 받을 것이 아닌가”라며 앞분의 비판에 호응하는 것이었다.

어느새 모임의 분위기는 연고전에 대한 찬반론 대신에 김군에 대한 성토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 때 사회석에 있던 김양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 모임은 여러분들이 젊은 마음을 가지려고 스스로 만든 자리입니다. ‘처단’이라는 용어는 젊은 사람들이 애교로 쓰는 말입니다. 우리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이해해줄 생각은 안하시고 기성세대가 거부감을 가진 용어를 쓴다는 사실만으로 젊은이를 나무라시면 저희와 여러분 사이에 존재하는 벽은 점점 두꺼워 질 따름입니다.”

참석자들은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듯 깜짝 놀랐다. 그 후 젊은이들의 생각을 들어보자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나는 젊은 세대와 기성에대간에 존재하는 불신과 단절의 벽이 생각보다 훨씬 두껍다는 것을 느꼈다. 한편으로 이런 대화를 통해 그 간격을 줄일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를 했다.

조동성(서울대 국제지역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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