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윤득헌/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

  • 입력 1999년 11월 23일 18시 51분


▽“그런 거 가지고 뭘 그래요. 또 사면 돼요.” 어린이들이 잃어버린 학용품을 별로 찾으려 하지 않는다는 초등학교 교사의 얘기를 실감하기는 어렵지 않다. 지하철 역사에 나 붙는 유실물 공고가 그렇다. 휴대전화기 지갑 가방 전자기기까지 별게 다 있다. 공고 5일동안 절반 정도만 찾아 간다는 것이다. 어린이도 청소년도 어른도 잃어버린 것을 찾느니 새로 사겠다는 사람이 많다.

▽소비의 자유가 침해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도 있다. 남들이 갖고 있거나 좋다는 물건을 덩달아 사거나 새로 나온 물품을 무조건 산다면 언젠가는 골치 아픈 정리가 필요할 것이다. 환경운동가나 학자들은 불필요한 소비를 상품생산에 수반되는 환경오염, 노동문제, 불공정거래와 쓰레기 문제 등과 연관시켜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여러 가지 예와 통계를 제시한다. ‘한 벌의 모피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200마리의 밍크, 10마리의 여우가 생명을 다 한다’ ‘우리나라 500만 가구가 실내온도를 1도씩 낮추면 연간 1040t, 보지 않는 TV의 플러그를 빼면 연간 1330t의 대기오염 물질을 줄일 수 있다’ ‘전 세계 20%의 인구가 세계 자원의 80%를 소비하고 있다’ 등등.

▽녹색연합이 26일 하루내내 서울 명동에서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Buy Nothing Day)’행사를 벌인다. 쇼핑거리에서 행사 버튼을 나눠주고는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가지씩 한다는 다짐을 받기도 한다. 과소비를 자제하자는 캠페인이다. 92년 캐나다에서 시작된 이 행사에 올해는 13개국이 참가한다고 한다. 환경단체의 ‘골프 치지 않는 날(No Golf Day)’행사 당일에도 전 세계 골프장은 평상시와 다름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환경 캠페인은 자주 하는 게 좋다. 나라를 시끌벅적하게 하는 옷로비 사건도 모피 옷 욕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기 때문이다.

윤득헌〈논설위원〉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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