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自作'인가 '주문생산'인가

  • 입력 1999년 10월 28일 00시 07분


이제 한 가지 분명해진 것은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폭로한 ‘언론장악 음모’ 문건은 중앙일보 문일현(文日鉉)기자에 의해 작성됐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서 작성 및 전달과정은 여전히 정부여당 한나라당 중앙일보 3자간에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부 여당은 문기자가 작성한 문건을 중앙일보 간부가 정의원에게 전달했다는 것이고, 정형근의원은 이 문건을 이강래(李康來)전청와대정무수석이 작성했다는 주장을 거듭하고 있다. 또 중앙일보는 문기자가 이종찬국민회의 부총재에게 보낸 것이라고 한다. 도대체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

사건의 전모는 앞으로 한 점 의혹없이 밝혀져야 하겠지만 중앙일보 문기자가 ‘언론장악’ 문건을 작성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현직 언론인이 정권에 언론장악을 하라고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써줬다니 놀랍고 개탄스럽다. 문기자는 물론 소속사인 중앙일보사도 응분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본다. 중앙일보측은 문기자가 문건 작성 당시 휴직원을 내고 연수중이어서 중앙일보기자의 신분이 사실상 정지된 상태였고, 문건 작성도 문기자 개인이 한 일로 회사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번 일로 인해 전체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을 가볍게 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책임문제와는 별도로 문기자가 자발적으로 권력측에 ‘연애편지’를 쓴 것인지, 아니면 권력측의 요구에 따른 ‘주문생산’인지부터가 명백히 밝혀져야 한다. 이 점은 이번 사건의 본질을 좌우하는 핵심적인 사항이다. 그리고 차제에 언론계 내부에 일부 기생하고 있는듯한 ‘정언(政言)유착’의 치부(恥部)는 조직이든 개인이든 말끔히 도려내야 한다. 과거 정권에서 보였던 ‘누구 장학생’하는 식의 유착관계가 아직 남아 있다면 이번 일을 계기로 척결해야 마땅하다.

이번 사건의 의혹을 풀기 위해서는 또한 문서의 전달과정이 명확하게 밝혀져야 한다. 중앙일보의주장처럼이 문건이 맨처음 이종찬국민회의부총재에게직접 전달됐다면 ‘주문생산’의 개연성도 무시하기 어렵다. 폭로 당사자인 정형근 의원도 어제 오후 이부총재 측근으로부터 제보를 받았다고 주장한 만큼 분명하게 매듭을 지어야 한다.

이와 함께 정부 여당은 정의원에게 문서를 전달했다는 중앙일보 간부가 누구며 언제 어떻게 전달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중앙일보는 특히 국민회의가 주장하는 ‘중앙일보 간부의 지시에 따른 문서작성’ 여부도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 역시 여당의 발표내용이 사실무근이라면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이번 사건은 결코 여야 정쟁으로 시간을 끌 일이 아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