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진회/안개속 美증시와 한국경제

  • 입력 1999년 10월 20일 18시 29분


미국 증시의 다우존스 주가 지수가 10,000선을 돌파한 지 6개월여가 지나 하락 추세를 보임에 따라 국제 금융 시장에서는 미국 증시의 폭락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 다우존스 지수는 8월24일 11,365선에서 고점을 찍은 후 약 2개월째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10월18일에는 심리적 지지선인 10,000이 잠시 깨졌다. 이러한 약세 분위기가 적어도 연말까지 이어져 9,000대까지의 하락도 가능해 보인다.

▼급락 가능성은 적어▼

미국 증시 약세의 직접적 요인으로는 미국 경제의 지속되는 호황 및 세계경제의 회복세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와 잇따른 금리 인상을 들 수 있다.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올 6월과 8월 두 차례 연방기금 금리를 인상했다. 앞으로 6개월 내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의 금리 추가 인상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또 미국 경상수지 적자 누적과 이로 인한 달러화의 약세도 중요한 요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의 장기 성장추세는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전망한다. 현재 진행되는 금리 인상 및 달러 하락 추세는 미국 경제의 연착륙을 유도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이며 미국 경제가 내년에 급속도로 추락할 것으로 보는 견해는 소수 의견에 불과하다.

미국 증시가 약세를 보일 때마다 증시 폭락 시나리오가 대두되는 이유는 끊임없이 나오는 미국 증시의 ‘거품’ 논란에서 비롯된다. 96년 말 그린스펀 FRB 총재가 증시의 ‘비이성적 열기’를 경고한 이래 미국 주가가 적정 수준보다 고평가돼 있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대두됐다. 그 와중에서도 미국 주가는 최근 3년 동안 50% 이상 상승했다.

90년대 미국의 장기 호황은 주가 상승으로 인한 개인들의 소비 증가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주식 시장을 연결 고리로 한 주가 상승과 경제 성장의 선순환 구도를 확립했다. 그러나 미국의 소비 증가가 이제는 위험 수준에 다다랐다는 증거가 차츰 발견되고 있다. 올들어 악화된 경상수지 적자 역시 소비 증가와 저축 감소가 계속되는 증거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주가가 폭락한다면 개인 소비가 갑자기 감소해 이제까지의 선순환 구도가 주가 하락과 경제불황 심화의 악순환으로 돌변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증시 폭락과 경제불황이라는 시나리오는 과연 어느 정도의 현실성이 있는가? 미국 정책당국은 적절한 금리 인상 및 달러화 하락을 통해 주식 시장의 단기 조정 및 경제 성장의 연착륙을 유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구조조정 박차 가해야▼

설사 증시 폭락이 현실화되더라도 미국 경제의 거시 전망 및 기업체의 수익증가 추세가 변하지 않는다면 작년에 겪었듯이 ‘폭락 뒤의 폭등’이 올 가능성도 있다. 사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단기적인 폭락보다도 현재의 단기적 하락 추세가 1년 이상 장기화될 가능성이다. 미국 경제의 악순환 구도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증시의 단기적 폭락보다는 장기적 하락 추세로의 전환이 나타날 경우에 훨씬 더 클 것이다.

결국 현재의 미국 증시 약세는 폭락보다는 단기적 조정에 그칠 가능성이 크며 폭락이 있다 할지라도 장기적 하락 추세로 반전될 가능성은 적다. 또 실물 경제에 악영향이 있다 하더라도 1∼2년 뒤에나 그 영향이 나타날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미국 시장의 호황에 따른 수출 증가가 큰 몫을 했다. 따라서 미국 증시 폭락으로 인한 경기불황 가능성이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 현재 세계 경제가 회복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올해 시작된 유럽과 일본의 경제 회복 추세가 내년도에는 더욱 본격화될 전망이며 아시아 신흥 시장 국가들 역시 외환 위기의 충격에서 뚜렷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최악의 증시 폭락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더라도 그 충격이 실물경제에 직접 전달되기까지는 1년 정도의 여유가 있다.

결국 단기적인 미국 증시의 움직임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한국경제의 내부적 과제, 즉 구조 조정과 경쟁력 향상을 위한 노력을 계속 추진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전략이라 하겠다.

박진회<씨티은행 서울지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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