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248)

  • 입력 1999년 10월 18일 19시 02분


하루는 교무과 주임이 찾아와서 나를 포함해서 학생 두 사람을 지명했고 우리에게 특별면회가 허용되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긴 팔 수인복으로 바꾸어 입은 직후였으니까 아마 시월 초였을 것이다. 모기와 파리와 초열지옥 같은 시멘트 벽의 열기에 시달리던 여름을 넘기고나면 밤에는 귀뚜라미가 울고 열어젖힌 식구통으로해서 변소 창문으로 빠져 나가는 바람이 온몸의 솜털을 간지럽히는 것만 같았다. 세끼 밥만으로는 날마다 허기가 질 정도로 늘 배가 고팠다. 요리책을 빌려다가 ‘외식’을 하고 등산이며 낚시며 하는 잡지와 관광지도 책을 펴놓고 ‘외출’을 나가는 것도 그 무렵이었다. 가끔씩 이런 통방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야, 설악산 특집호 누가 가져갔냐?

내가 아직 보고 있어.

빨랑 돌려주지 못해?

이거 왜 이래. 지금 한계령두 못넘었다구.

이새끼 내설악까지 언제 들어갈라구 거기서 꾸물대냐.

하여튼 그런 계절에 특별면회를 시켜 준다고 우리를 데려다 놓았으니 은근히 무엇이 나오려나 기대가 되었다.

선배님 나는 요번 달 면회 다 끝났어요. 일반 장기수들 보니까 자매님들이 먹을 거 잔뜩 싸 가지구 찾아 오든데요.

조직 사건으로 들어온 키가 멀쑥하게 큰 학생이 말했고 집시법으로 들어온 총학생회장 지낸 친구가 중얼거렸다.

아아 인절미나 실컷 먹었으면 원이 없겠심더.

그는 버즘꽃이 허옇게 핀 얼굴에 돋아난 듬성듬성한 수염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내게 속삭였다.

선배님은 특별면회라카는 규정 자체가 없지예? 아매 틀림없이 지장 찍으라꼬 꼬실 모양입니더.

키다리가 말했다.

설교하면 이러쿵 저러쿵 반론 하지말자야. 보따리 풀자마자 신나게 먹어주는 거야.

세상에 공짜가 어딨노. 나중에 생각해 보겠다꼬 하는 정도는 들어줘야 하는기 아이가? 니 봐라 인자 두고두고 시달릴끼다.

교무과의 계장이 들어섰다. 그는 자칭 교수였는데 겉으로는 얌전하고 싹싹한 인상이었지만 출세에 관한한 집요하고 교활한 인물이었다. 이를테면 옛날 말로 ‘다다께 아가리’ 라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온 자라는 뜻이었다. 그는 자기가 처음 잎사귀 두 개 짜리 말단 교도로 들어왔을적의 고생을 늘 입에 달고 살았다. 그는 그런 시절로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을 강조했다.

동생들은 밑에 주렁주렁하지 아버지는 누워 계시지 어머니가 행상을 나다니셨는데 어떻게 진학할 꿈을 꾸겠나. 전에는 중학교나 나오고 법률 상식만 대충 맞추면 합격이 되었거든. 그래두 공무원이니까. 우리네야 정말 민초라구. 느이들은 배지가 부르고 등 따신께 하라는 공분 않고 데모나 했지만. 나 솔직히 느이들한테 원한이 많어. 유신 시절에는 우리도 고생이 많았다고. 전에는 복도에 난로도 없었고 아예 근무자 책상이나 의자도 없었당개. 그냥 서서 밤 새우라 이거여. 사동 복도에서 추위에 와들와들 떨며 느이들 방을 들여다보면 차라리 재소자 신세가 부럽더라 이거여. 담요 속에 대가리 박고 정신없이 자는 꼴을 보면 옥문 따고 들어가 같이 드러눕고 싶더라니께. 서서 졸다간 자빠져서 코 깨질까 무섭고 혀서 우리들끼리 짜낸 꾀가 갈고리를 만드는 거였다고.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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