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구불구불 시내버스 노선

  • 입력 1999년 10월 10일 19시 39분


서울시내 버스노선 가운데 출발지점과 도착지점을 곧게 잇지 않고 이곳 저곳을 에돌아 가는 노선이 많아 시민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상당수 버스노선이 손님이 많은 도심을 반드시 경유하도록 짜여 있어 도심 교통난을 가중시키는 것은 물론 외곽지역에서 출퇴근하는 시민들을 짜증나게 하고 있다.

굴곡이 심한 서울 버스노선의 문제점과 대책을 짚어 본다.

▼현황

현재 서울시에 등록된 좌석버스와 시내버스 노선(마을버스 제외)은 모두 369개. 이 가운데 가장 많은 버스노선이 중첩된 지점은 서울역으로 이곳을 거치는 노선은 무려 100개가 넘는다. 도심의 대명사인 종로를 통과하는 노선도 80여개나 된다.

따라서 시민들은 표지판에 적힌 도착지만 보고 버스를 탔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자칫 잘못하면 공연히 서울시내 중심가를 완전히 거쳐가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 서쪽 외곽인 은평구 수색지역과 남서쪽 끝자락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를 잇는 142번 버스의 경우 인접한 성산대교를 이용하지 않고 도심인 광화문 네거리를 통과한 뒤 한강대교를 거쳐 서울대로 간다.

성산대교를 통과하는 노선을 택할 경우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의 거리는 17㎞에 불과하지만 현행 노선은 30㎞가 넘는다.

게다가 도심지의 교통난까지 감안하면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가는 데 2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강남구 수서동 지하철 수서역을 출발해 중구 명동까지 가는 시내버스 288번도 마찬가지. 동호대교 등을 이용하면 운행거리를 훨씬 단축할 수 있지만 강남지역을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가로지른 뒤 한강대교를 지나 서울역으로 돌아간다.

이때문에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해도 도착지까지 2시간 가량 걸린다.

강남 수서동에서 서울역으로 매일 버스로 출퇴근하는 회사원 전병희(田秉熙·30)씨는 “버스 한번 잘못 타면 서울시내 전체를 유람해야 한다”며 “어느 때는 미로를 헤매는 느낌마저 든다”고 불평했다.

▼원인

이처럼 버스노선이 꼬불꼬불한 이유는 노선에 따른 승객의 수 때문. ‘황금지점’인 도심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는 게 버스업자들의 주장이다.

버스 기점과 종점 사이에 지하철역 등 경유지가 많기 때문에 노선이 직선으로 될 경우 많은 승객들을 잃게 된다는 것.

또 굴곡노선을 직선화하기 위해 노선을 변경할 경우 노선에서 제외된 지역 주민들의 반발도 적지 않다.

이같이 지역주민과 버스업자들의 복잡한 관계가 얽혀 있어 서울시는 사실상 노선 직선화 작업을 포기한 상태.

서울시 관계자는 “대부분의 관련공무원들은 지금 노선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최선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더 나은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책

서울을 몇개의 권역으로 나눠 권역 안에서만 운행하는 ‘단거리형 버스’와 권역을 이동하는 ‘장거리형 버스’로 분리해야 한다는 대안이 오래전부터 제시돼 왔다.

권역 안에서는 지하철 등 다른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지점을 중심으로 노선을 재정립하고 대신 권역 사이를 오가는 장거리 버스를 새로 신설하자는 것.

하지만 이 방법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요금체계의 개선과 환승 시스템의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지하철처럼 갈아타는 것을 자유롭게 하는 대신 이동거리에 따라 요금을 다르게 하는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것.

또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탈 때 거리 단위로 돈을 받는 ‘버스―지하철 통합요금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민간사업자들이 버스를 운영하는 현행체제하에서는 이같은 변화가 불가능하다.

또 업자들도 현재 보유하고 있는 ‘황금노선’을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반발을 무마시키는 일도 쉽지 않다.

시정개발연구원 김순관(金淳觀)박사는 “업자와 지역주민들의 반발 등을 고려한다면 현 체제를 유지한 채 잘못된 노선을 조금씩 수정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통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김수협(金秀協)사무총장은 “버스는 서민들의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인 만큼 변화가 필요하다면 당연히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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