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한진수/한국의 부패지수

  • 입력 1999년 10월 6일 18시 43분


국제투명성위원회(TI·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밝힌 98년도 한국의 국가청렴도는 조사대상 85개국 중 43위였다. 덴마크가 10점 만점으로 1위를 차지했고 핀란드 스웨덴 뉴질랜드 아이슬란드가 청렴지수 9.6∼9.3으로 2∼5위를 기록했다. 우리가 대단한 선진국으로 알고 있는 영국이 11위(청렴지수 7.9), 독일 15위(〃 7.9), 미국이 17위(〃 7.5)이니 이들 상위 5개국은 무공해 청정(淸淨)국가, 아마 천국에 가까운 나라인 것 같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 7위(청렴지수 9.1), 홍콩 16위(〃 7.8), 일본 25위(〃 5.8), 말레이시아와 대만이 29위(〃 5.3)로 우리보다 한 차원 높은 국가였다.

우리가 후진국 쯤으로 알고 있는 아프리카의 짐바브웨가 우리와 같이 청렴지수 4.2로 공동 43위였고 말라위 슬로바키아 잠비아 이집트 인도 필리핀 러시아 등이 우리보다 국가청렴도가 떨어지는 나라로 발표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가운데 국가청렴도 부분에서는 우리가 꼴찌이거나 꼴찌에 가까운 나라인 것 같다.

얼마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주최한 ‘부패방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김성수(金成洙)성공회주교는 주제발표를 하며 이같은 치욕스러운 결과를 크게 한탄했다. 김주교는 “백의민족의 정기와 선비정신을 중시해온 민족적 자부심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했다. 그같은 안타까움이 그를 반부패국민연대 회장직을 맡게 한 것 같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한 토론자는 태초(太初)부터 있었던 악(惡)으로 ‘도둑 매춘 뇌물’을 꼽았다. 그만큼 없어지기 어려운 것이라는 의미다.

8·15 경축사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최근 대형 탈세사건 등의 조사가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패와의 전쟁’까지 선포한 정부에서의 탈세조사가 전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한편에서 그 배경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논란을 빚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근본적 이유는 권력에 대한 불신이 원죄(原罪)처럼 깔려 있기 때문이다. 표적사정이니 보복사정이니 하는 말들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입증한다. 역대 정권의 표적, 보복사정으로 꺼꾸러진 기업이나 개인이 어디 한 둘인가.

그러나 표적, 보복사정을 당했던 그들에게 잘못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표적, 보복사정을 당한 쪽이 그 구실을 제공했기 때문에 표적, 보복사정도 가능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뒤 한 고위인사는 사석에서 “넥타이 맨 사람치고 털면 먼지 안나는 × 없더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사정당국을 지휘 감독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 가운데도 한때 부정부패와 관련돼 물의를 빚은 이가 있다.형사정책연구원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국민이 생각하는 부패지수 1위는 정치인, 그 다음이 재벌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고는 ‘부패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또 권금(權金)유착의 고리가 되는 선거와 정치자금의 반(反)투명성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고서는 표적, 보복사정 시비도 없앨 수 없다.

세미나에서 이석연변호사는 국회에 계류중인 부패방지법의 조속 제정을 촉구하며 “선거에서 지더라도 개혁을 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개혁은 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지금의 지도자들은 그런 의지가 있는가?

한진수<사회부장>han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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