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용정/한국은 미래를 준비하는가

  • 입력 1999년 9월 28일 18시 49분


일본의 세계적 경영컨설턴트인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의 ‘한국경제 비판’은 충격이었다. 그는 현재 추진중인 한국의 경제개혁방향을 통박하면서 한국이 ‘백년 하도급국(國)’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그의 고언(苦言)은 한국경제계와 지식인 사이에 민감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정치권에서도 논란의 불꽃이 튀었다. 한마디로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 많다’는 긍정론과 ‘편견으로 얼룩진 무책임한 논리’라는 비판이 엇갈렸다.

▼오마에-돈부시 논쟁▼

그같은 논란이 한국에서 일과성 파문처럼 잠잠해질 무렵 오마에에 대한 반박이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미국 MIT교수 루디거 돈부시의 ‘십자포화 속의 한국개혁’이라는 반론이 그것이다. 그는 “오마에의 한국경제 비판이 ‘무지와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며 한국은 결코 그같은 비판따위에 귀기울이지 말라”고 충고한다. 오마에의 독설이 우리에게 충격이라면 돈부시의 격려는 위안인가.

오마에가 일본의 국제정보지 ‘사피오’에 기고한 논평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한국이 그동안 추진해 온 개혁은 어떤 결실도 볼 수 없는 ‘미국화’의 맹목적 추종에 불과하다. 한국의 IMF 개혁처방 수용은 ‘금융제국주의’ 미국에 대한 굴복이다.”

“한국은 절대로 선진국이 될 수 없다. 한국은 일본에서 수입한 부품을 조립해 수출하는 저부가가치의 ‘pass through’ 경제인데도 산업구조를 바꾸려는 진지한 노력이 없다.”

“일본과 중국사이의 ‘넛크래커’에 낀 한국이 일본과 다른 분야에서 독자적인 공업화사회로 발돋움하기란 쉽지 않다. 소프트웨어나 정보사회로 이행하려고 해도 미국이나 인도를 뛰어넘을 영어 수학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금융경제로 옮겨가는 것도 경쟁력을 갖춘 은행이 없어 불가능하다.”

“한국이 뉴라운드협상에 따라 시장을 완전개방하게 되면 2차산업은 일본제품에 석권돼 궤멸하고 3차산업은 미국의 독점하에 놓일 것이다.”

이에 대한 돈부시의 반론은 무엇인가.

“오마에의 주장은 경제원론과도 어긋난다. 제조업에서 수직적 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생각은 경제학의 기본개념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중앙집중방식을 버리고 시장경제원리로 자원을 배분한 나라들은 그에 상응한 발전을 이루었다.”

“IMF처방과 관련한 주장 역시 그렇다. 97년 12월 한국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국가부도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IMF의 처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국은 경제위기를 그 어떤 국가보다 빠르게 극복해 가고 있다.”

“오마에 비판의 일관된 주제는 아시아문제는 아시아 고유의 치료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한국을 일본에 넘기라는 것으로 대동아공영권의 핵심내용을 반영하고 있다.”

▼장기 청사진 마련 혼선▼

한국의 개혁노력에 대한 이같은 상반된 견해는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오마에의 한국경제 비판이 ‘세계화로 위장된 한국의 미국화’를 경계한 것이라면 돈부시의 반론은 ‘미국 시스템의 글로벌스탠더드화’의 반발에 대한 또다른 ‘일본 때리기’와 다름없다. 그 밑바탕에는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구축과 미국의 ‘팍스 아메리카나’ 세계질서 확립이라는 상반된 이해관계가 엇갈려 있다. 오마에의 독설이 한국의 현실과 개혁방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오류라면 돈부시의 반론은 미국의 신자유주의 교조화(敎條化)를 위한 강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한심한 것은 우리의 반응이다. 오마에의 오류를 제대로 지적하지도 못한 채 한국의 정관재계(政官財界)는 물론 지식인사회까지 벌집을 쑤셔 놓은듯 들끓었다. 돈부시의 그렇고 그런 반론이 큰 반향을 일으킨 것도 지적(知的) 사대주의의 발로라 할 수 있다.

한국의 미래비전은 분명하다. 한마디로 선진국으로의 도약이다. 그러나 우리는 단기현안에 매달린 나머지 IMF관리체제 이후의 장기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변화를 위한 전략과 실천프로그램도 경제주체간 관계의 복잡성, 기득계층의 저항과 대중의 무관심, 고통분담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대립 등으로 혼선을 빚고 있다. 한국의 개혁에 대한 비판과 부정적 시각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은 과연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가.

김용정 (논설위원)yjeong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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