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먼저 정치부패 척결을

  • 입력 1999년 8월 17일 18시 25분


또다시 ‘부패와의 전면전’이 선포됐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8·15경축사에서 부정부패 척결 의지를 밝힌데 이어 정부와 여당은 그 후속조치로 부패방지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이번 대책에는 부패방지법 제정 등 총체적 부패통제 시스템에서부터 공직자의 의식개혁과 부패 취약분야의 행정개혁에 이르기까지 부패척결을 겨냥한 거의 모든 대책이 망라되어 있다.

그러나 이같은 대책만으로 우리사회에서 부정부패가 근절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권마다 부정부패 근절을 외쳐왔으나 부패없는 맑은 사회는커녕 망국적 고질병은 더욱 깊어져 왔다. 국제투명성위원회(TI)가 밝힌 한국의 청렴도 순위는 96년 27위에서 97년 34위, 98년 43위로 곤두박질쳤다. ‘부패공화국’의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그동안 역대정권이 부정부패 추방을 외치면서도 부패구조 척결을 위한 근원적 처방은 뒤로 미뤄둔 채 전시효과적 단기대증요법에 매달려왔기 때문이다.

물론 부패방지를 위한 체계적 기반구축으로서 부패방지법 제정은 시급하다. 또 고발자 보호제도 도입이나 고발보상제도 강화, 시민감사관 제도와 시민감사청구권제 도입, 세무 건설 위생 환경 등 부패 취약분야의 행정개혁 등은 적극 검토할 만하다.

그러나 이번 종합대책에는 실현가능성이나 실효성보다는 전시효과만을 노린 대책 등도 나열돼 있다. 깨끗한 공직풍토조성을 위한 공직자의 행동강령 제정이나 공직자 보수개선 등이 부패방지를 위해 얼마나 유효한 것일지는 의문이다. 초 중 고 교과서에 반부패의식 함양을 위한 내용을 포함시킨다는 발상은 난센스다. 정작 부정부패는 어른들이 저지르면서 맑고 티없이 자라야 할 어린이들을 예비범법자쯤으로 취급하자는 것은 비교육적이다. 한마디로 문제의 본질과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는 증거다.

더욱 세대를 뛰어넘어 한국적 고질병으로 체질화된 부정부패가 진정 어디서부터 비롯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 한국적 부정부패의 뿌리는 단연 정치부패다. 그것은 정경유착의 모습으로 우리사회를 송두리째 병들게 하고 있다. 91년부터 시행된 지방자치제는 자치단체장과 토착세력과의 유착을 통해 공직부패의 외연을 급속도로 넓혀가고 있다. 법과 정의도 때로는 당국에 의해 유린되면서 그 규범성이 상실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을 그냥 놔둔 채 아무리 부패척결을 외쳐본들 부정부패는 뿌리뽑히지 않는다.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 한다. 부패라운드 출범은 차치하고라도 우리 사회의 얽히고 설킨 부패사슬을 끊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한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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